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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치정, '국제 언어'로 중국의 이야기를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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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china.org.cn | 时间: 2019-01-15 10:11:20

2018년 12월 18일, 자오치정은 농공민주당 상하이시위원회 개혁개방 40주년 축하 보고회에서 자신이 참여한 푸동 개발·개방 이야기를 했다. 사진/ 완취안(萬全)


자오치정(趙啓正)은 명문대 출신의 핵물리 전문가이자, 푸둥(浦東)의 기적을 창조한 ‘푸둥자오(浦東趙)’이며, 능숙하게 기자를 대하는 ‘중국 최초의 뉴스 대변인’이자, 세계에 중국을 설명한 ‘교류의 사절’이다. 지금도 중요한 회의와 국제 포럼, 보고회에서 79세의 자오치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40년생인 자오치정은 직함이 여러 개다. 그는 신중국 발전 단계에 따라 끊임없이 역할을 바꾸며 다채로운 인생사를 써내려갔다.

 

과학기술로 ‘보국(報國)’하겠다


1949년 10월 1일 개국 기념식, 중국은 신기원을 열었다.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부모님은 신중국 성립을 매우 기뻐하셨고 라디오에서 마오(毛) 주석의 연설이 방송됐다.” 신중국 성립 때를 말하면서 자오치정은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선생님이 신중국이 성립됐다며 어린이들은 열심히 공부해 이 다음에 나라에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오치정은 어린 시절 자신은 장난꾸러기였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장난꾸러기는 나중에 톈진난카이(天津南開)중학교에 입학한다. 난카이중학교는 애국 전통이 강한 명문학교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모교이고,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도 이곳에서 수학했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했고, 1958년 중국은 최초의 실험 원자로를 건설했다. 수학, 물리학, 화학을 좋아했던 자오치정은 이에 크게 고무됐다. “당시 신중국의 과학기술은 이제 막 발전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첸쉐썬(錢學森), 자오중야오(趙忠堯), 첸싼창(錢三強) 같은 과학자가 내 우상이었다.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고 대학 입시에서 모두 물리를 지원했다. 1지망이 중국과학기술대학교의 핵물리학과였다.”


1958년 자오치정은 우수한 성적으로 원하던 중국과학기술대학교 근대물리학 핵물리학과에 입학했고 저명한 물리학자인 자오중야요와 첸싼창에게 배웠다. 1963년 졸업한 그는 조국의 부름을 받고 국가의 배치에 따라 제2기계공업부에 입사해 장장 21년 동안 과학자로 일했다. ‘과학보국(科學報國)’이 자오치정의 초심이다.


이 기간 자오치정의 삶과 일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여러 상을 받은 것으로 보아 그가 우수한 핵공업 전문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항천부(航天部)와 상하이(上海)시로부터 ‘선진 작업자’, ‘노동 모범’이라는 칭호를 받아 당시 상하이시에서 가장 젊은 우주비행 관련 선임엔지니어가 됐다. 당시 그는 예정된 궤도대로 과학기술자의 길을 열심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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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来源:人民画报
关键词:[중국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