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교사 위안옌민, 산골 어린이의 꿈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다

中国网  |   송고시간:2019-09-16 17: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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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성 농촌 여교사 위안옌민(袁艷敏)은 13년 4700여 일의 낮과 밤, 청춘을 바쳐 공산당원의 집념과 의지를 써내려갔다.

 

그녀의 어린 시절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2006년, 허강(鶴崗)사범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헤이룽장성으로 가서 ‘3지1부(三支一扶:교육.농업.의료지원 및 빈곤구제) 계획’에 자원했다.

 

“농촌은 교사가 가장 부족하기 때문에 농촌 초등학교에 가기로 했다.” 그녀는 자무쓰(佳木斯)시 교외에 있는 완파(萬發)초등학교를 선택했다. 자원봉사자로 자원한 그녀의 당시 급여는 600위안에 불과했다.

 

도시와 농촌의 경계 지역에 있는 완파초등학교에는 6개 학급, 10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부모가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나고 남겨진 어린이들과 외지에서 온 근로자의 자녀들이었다.

 

“학교는 가장 원시적인 긴 나무 책상을 사용했고, 망가지면 교사가 직접 수리해야 했다.” 농촌 근무에 대해 일찌감치 마음의 준비를 한 그녀였지만 도시에서 자란 그녀는 눈 앞의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저녁에는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2년의 교육 지원 기간이 끝난 후 아이들은 그녀가 떠나는 것이 아쉬워 말을 잇지 못했고, 학부모들도 그녀에게 남아있어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의 교육 지원 계약 기간 2년이 끝나면 월급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졸업하려면 1년이 남아있었다. 내가 가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그녀는 그녀가 떠난 후 새로운 선생님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기에 남기로 결정했다.

 

1년 후 졸업식에서 반 학생 52명과 학부모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한 학부모가 먼저 입을 뗐다. “위안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 애들 반을 맡아 가르친 1년 간 월급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왜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어요? 교장 선생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을 뻔 했어요”라며 주머니에서 100위안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다른 학부모들도 그녀에게 돈을 주었지만 그녀는 모두 돌려 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농촌에서 교육은 아이들의 꿈이자 모든 가정의 희망임을 또 한 번 깨달았다.

 

2009년 11월, 그녀는 또 다시 농촌에 남기로 결정하고 화촨(樺川)현 황터우산(橫頭山)진중심초등학교에 가서 농촌 특별 교사가 되기로 했다. 황터우산에서 교편을 잡은 10년 간 그녀는 9개 학급을 맡았고, 400 여 차례 가정방문을 했다.

 

이 기간 시와 현의 유명 학교들이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녀처럼 농촌 특별 교사에 합격한 동료들은 이직을 하거나 전근을 갔다. 하지만 그녀는 “교사는 직업이자 신앙이다. 가장 필요한 곳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