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게 투쟁에 임하여 승리하는 것은 중국 혁명 성공의 경험적 결론이자 당과 인민이 이길 수 없는 강인한 정신적 역량이다.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도움)라는 위대한 투쟁에서 당 중앙은 장기적 안목으로 참전을 결정했고 인민 군대는 명령에 따라 용맹스럽게 출정했으며 지원군 장병들은 목숨을 걸고 혈투를 벌였다. 전국의 인민이 한마음으로 적개심을 품고 용감하게 투쟁한 끝에 승리를 쟁취하여 불후의 금자탑을 세웠다.
항미원조와 국가 수호의 위대한 결정은 당 중앙의 장기적 안목과 용감하게 투쟁에 임하는 비범한 담력과 기략을 보여주었다.
항미원조와 국가 수호의 전략적 결정은 마오쩌둥 동지와 그의 전우들이 일생 동안 '가장 어렵게' 내린 중대한 결정 중 하나였다. 당시 신중국 건국 직후 그간 방치되거나 지체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이 유엔의 명의로 모집한 15개국을 동원하여 만든 이른바 '유엔군'에 맞서야 했고 적군과 아군의 실력 차도 상당히 컸다. 따라서 미 제국주의자들은 신중국의 눈치도 볼 필요없이 해군 7함대를 파견하여 타이완 해협을 침입하고 중국의 내정을 공공연히 간섭하며 통일의 대업을 방해했다. 이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전폭기로 동북국경에 포탄을 쏘아대는 등 여러 차례에 걸친 중국 정부의 경고를 묵살했다.
제국주의의 침략 행위와 전쟁 위협에 직면하여 감히 누가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침략자와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긴박한 군사 정세와 극심한 압박 속에서 정책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1950년 10월 초중순에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거듭 논의를 진행했다.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참전의 이해득실을 거듭 저울질하고 전쟁 진행에 대한 과학적 예단을 거쳐 당 중앙과 마오쩌둥 동지는 결국 '마땅히 참전해야 한다, 반드시 참전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고 최종적으로 항미원조와 국가 수호라는 중대한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이는 여러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후의 확고한 주장이며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상황을 검토하는 탁월한 지략이다. 또 이 결정은 '전략적으로 적을 무시한다'는 두려움을 모르는 패기와 '전술적으로 적을 중시한다'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고 '늦게 싸우는 것보다 일찍 싸우는 것이 낫다'는 비범한 기백과 '적이 원자폭탄을 투하하면 우리는 수류탄을 던진다'는 주도면밀한 지혜가 담겨 있었다. ‘백번의 주먹이 오지 않도록 한번의 주먹으로 때리는' 전략적 안목 뿐만 아니라 '참전의 이익이 매우 크다'는 뜻깊은 견해도 담겨 있다.
항미원조와 국가 수호의 역사적 결정은 우리 당이 용감무쌍한 영웅적 기개로 평화를 수호하는 역사적 사명을 과감하게 떠맡아 갓 탄생한 신중국이 가혹한 국제환경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신중국의 장기적 발전에 토대를 마련했다. 항미원조 전쟁의 위대한 승리는 투쟁 속에서 탄생·발전·성장한 중국 공산당이 막강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 중국 인민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기둥임을 확실히 증명했다. 새로운 시대와 여정에서 우리는 항상 당의 전면적인 지도력을 견지·강화하고 '두 가지 확립'의 결정적 의의를 깊이 깨달으며 '네 가지 의식'을 강화하고 '네 가지 자신감'을 확고히 하며 '두 가지 유지'를 달성하고 군사위원회 주석 책임제를 관철하고 모든 행동을 당 중앙, 중앙군사위원회, 시 주석의 지휘에 따르며 시종일관 변함없이 당의 말을 경청하고 당과 함께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