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
2025년 6월 4일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한국의 대외전략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윤석열 정부 시기의 가치외교 중심 한미·한일 공조체제와는 달리, 이재명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표방함으로써 외교정책의 유연성과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이 직면한 외교적 딜레마, 즉 동맹의 의무와 자율적 외교 간 균형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해법은 정치적 논쟁을 배제하고 경제회복과 '리셋 코리아'의 물질적 기반 확보라는 실용적 국익의 실현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외교기조를 전환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현재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어떠한 전략적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이재명 정부의 '균형외교'에 대해 경계심을 표명하는 반면, 중국은 실용외교 기조에 일정한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또미국은 이재명 정부의 반중 전선 이탈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는반면, 중국은 전략적 협력 강화를 위한 의지를 보이며 새로운 양국관계의 정립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에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선거 과정에 대한 중국의 개입 및 영향력 행사를 깊이 우려하며, 단호히 반대한다"는 공식 성명을 통해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는 한국의 대중 노선 선회를 사전에 경고하려는 메시지로, 한국의 동맹 이탈 가능성이 미국의 동아시아 영향력 약화를 의미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동맹 유지와 대중 협력의 병행이라는 균형외교 노선에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향후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실용적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할 경우, 워싱턴이 요구하는 통상, 군비, 대북정책, 주한미군, 대만 문제 등 다양한 의제에서 미국의 의구심과 압박이 병행될 가능성이 높다. 즉, 한미동맹의 안보 기반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경제·전략 대화를 복원하여 협상 지렛대를 확보하고자 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은 상황에 따라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중국 정부는 시진핑 국가주석 명의의 당선 축전을 통해 이재명 정부 출범을 환영하며, 한중관계의 전략적 협력 재정립을 위한 우호적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시 주석은 축전을 통해 "중국과 한국은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 동반자"이며, "수교 33주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하자"는 기대감을 피력하였다. 아울러 "100년 만의 대전환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과 '상호 이익·윈윈'의 목표 아래 협력을 심화하겠다"고 언급함으로써 실용적 외교노선 하의 전략적 관계 전환을 기대하는 신호를 보냈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정책은 자유주의적 가치외교에서 탈피하여 경제적 실익과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외교노선으로의 전환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중관계 회복에 대한 재조정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실용외교 추진의 전략적 목표는 외교정책의 자율적 공간을 확장하는 것과안보·경제·기술 등 국가 생존의 핵심 분야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이는 과거 등소평 시기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수용한 것처럼, 이념적 분열을 초월하여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정부는 진보·보수의 정책적 경계를 넘나들며, 국익에 부합한다면 그 이념적 스팩트럼에 관계없이 수용할 수 있다는 유연한 외교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 외교는 중견국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외교적 자율성을 재확보하려는 시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과거 보수정부의 이념편향적 외교가 초래한 진영 구도의 제약을 극복하고 국익 중심의 현실주의 외교로 전환함으로써, 한국 외교의 지형을 다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한미동맹의 해체나 수정이 아닌, 전략적 명료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교적 탄력성을 확보하려는 신중한 접근이다. 실용외교의 성패는 한미동맹의 공고화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전면적 실질협력동반자관계'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복합전략의 실행 능력에 달려 있다.
이러한 국제정치적 조건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조적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 우선, 이재명 정부의 외교정책은 '유연한 중견국 외교전략'을 바탕으로 '조건부 편승전략'의 실행 가능성을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통해 확보해야 한다. 둘째, 미국은 동맹국에 '전략적 명확성'을 요구하며, 중국과의 전략적 모호성과 유연성은 사실상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셋째, 국내 보수 언론 및 정치세력은 대중 밀착 외교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는 실용외교 추진에 제도적·여론적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사드(THAAD) 추가 배치, △공급망 재편, △북핵 및 북한 인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서 보수 진영의 가치외교와 진보 진영의 실용외교 간 이해충돌은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의 고도화를 제약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난제들을 정면 돌파할 것인지, 혹은 전략적 우선순위 조정을 통해 실질적 경제회복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중 협력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한중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고위급 전략대화의 제도화, 둘째, 기술·안보·경제 등 민감 이슈에 대한 조정 메커니즘 구축, 셋째, 다자외교 플랫폼 내 협력 공간 확대, 넷째, 시민사회 차원의 반중·혐중 정서 완화 등이 실질적 외교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다. 이와 같은 정책 조치들이 구체화될 때, 한국은 소극적 회피자가 아닌 능동적 중재자이자 조율자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으며, 또한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실용외교가 지속 가능한 국가전략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초당적 합의와 학술·정책 인프라의 동시 구축이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적 외교전략은 국가정체성, 민주적 가치, 종합국력, 분단체제의 특수성 등 복합적 요소를 고려해 결정될 것이며, 가장 현실적인 접근은 사안별 '조건부 실용적 편승전략'을 선택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실용외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균형'의 표방을 넘어 '전략적 명료성'과 '전술적 유연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정교한 외교 설계가 요구된다.
글: 이상만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