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조선반도는 35년이라는 긴 식민 지배 끝에 독립을 맞이했다. 올해 한국은 광복(8.15) 80주년, 중국은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9.3) 80주년을 각각 기념하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저항과 승리의 역사를 되새긴다. 광복절은 일왕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종전 조서를 낭독하며 항복 의사를 표시한 날을 기념하며,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은 중국정부가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다음날부터 3일 동안을 경축 기간으로 선포한데서 유래되었다. 광복절과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은 자체적 의미로 보면 한국, 중국 등 국가가 파시즘 세력을 함께 이겨낸 경축할 역사이지만, 한국에서는 1992년 8월 중국과 수교 전까지 장기간 교류 단절로 인해 한중 협력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특히, 단절 기간 냉전 체제 하에서의 진영 대립으로 유발된 오해가 잔존하면서, 혹자는 광복절과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지 모를 정도로 잊혀지고 있다.
19세기 말, 청일전쟁(1894-1895)에서 청나라의 패배로 인해,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중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가 붕괴되었고, 국제 정세는 혼란 시기로 접어들었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에서마저 승리하면서 조선반도에 대한 독자적 영향력을 더 강화하였는데, 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을 통해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1910년 8월 일본은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통해 불법적으로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였다. 이어, 일본은 황고둔사건(1928.6), 9.18사변(1931.9), 만주국 괴뢰정부 수립(1932.3), 7.7사변(1937.7)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조선반도와 중국 동북 지역을 대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아 전면적인 침략을 감행하였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였다.
조선반도는 대륙 세력(Land Power)과 해양 세력(Sea Power)이 중요시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해양 세력에 속하는 일본은 대륙으로 확장을 도모하면서 수차례 조선반도를 침공하였는데, 특히, 임진왜란(1592-1598),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대대적인 침략에 맞서 중국과 공동으로 저항하였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은 망국의 현실에 굴하지 않고 국내외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독립운동, 광복과 독립 국가 수립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국정부와 인민들의 다방면적 지원을 받았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1932) 이후 중국정부는 임시정부 요인 보호, 임시정부 운영 재정적 지원, 군대 양성을 위한 인원 교육 등 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수많은 한국인이 황포군관학교와 광동항공학교 등에 조선 독립에 대한 기회가 있을 시 원조한다는 조건으로 입교하여, 후일 국민혁명군, 팔로군 편제 내에서 큰 활약을 하기도 하였다. 1943년 11월 개최한 카이로 회담에서는 채택할 선언문 내 한국 독립 보장 조항이 삭제될 위기에 놓이자, 중국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한 교섭에서 원안 수정 불가를 고수하면서 한국의 독립 국가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 한중이 협력하여 파시즘에 대항하였던, 지금은 잊혀 가는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중국정부는 상하이, 자싱, 항저우, 광저우, 충칭 등 각지에 산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안중근 기념관, 윤봉길 기념관, 김구 피난처 등 한국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를 기념 보존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한중 협력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쉬쉬하는 것이 아쉬울 노릇이다.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트럼프발 경제 리스크 등 국가경제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 양국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의 광복절과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계기로 과거의 협력 역사를 되새기고 이를 토대로 양국이 공동 발전을 위해 다시금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글: 한중경제사회연구소 소장,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강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