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5개년 규획은 단순한 경제개발의 청사진이 아니라, 국가 전략과 거버넌스 이념을 동시에 담아내는 정치경제적 제도이다. 제14차 5개년 규획(14·5)은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전략경쟁, 공급망 재편이라는 복합적 위기 속에서 '고품질발전(高質量發展)'과 '신발전격국(新發展格局)'이라는 두 축을 병행한 시기였다. 불확실한 국제환경 속에서도 중국은 2021~2024년 연평균 약 5.5%의 경제성장을 유지했으며, 2025년 국내총생산은 약 140조 위안(19조5천억 달러)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평하듯 '경제 총량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다'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14·5' 기간의 핵심은 과학기술 혁신과 산업고도화였다. 연구개발(R&D) 지출은 2024년 3조6천억 위안에 달했으며, 77개 국가 중대과학기술 인프라 중 35개가 가동 단계에 진입했다. 반도체, 인공지능, 항공우주, 신에너지 등 전략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했고, '이중순환(雙循環)' 전략을 통해 내수 중심의 자립경제를 강화하면서도 국제순환과의 연계를 유지해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응했다. 아울러 민영기업 진입규제 완화, 외국인 투자 제한 축소, '전국통일대시장(全國統一大市場)' 구축 등 시장제도 개혁이 병행되었다.
민생 분야에서도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고용안정과 사회보장 확충, 농촌진흥, 탄소배출 강도 감축 등 균형발전·녹색전환 정책이 추진되며 구조적 기반이 정비되었다.
이제 중국은 2026년부터 시행될 제15차 5개년 규획(15·5)을 통해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기본 실현'이라는 중장기 목표로 나아가려 한다. '15·5'의 핵심은 신질생산력(新質生產力)의 강화, 기술자립과 녹색전환, 내수 확대, 지역균형 발전, 그리고 시장제도·거버넌스 혁신으로 요약된다. 반도체, 양자정보, 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의 자립은 미·중 기술 경쟁에 대응하는 국가전략이자, '질적 성장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중국은 GDP의 정량적 성장률보다 질적·균형적 발전의 효율성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중국이 양적 성장 단계에서 축적한 성과는 이제 정책 구상과 규범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녹색전환, 일대일로, 상하이협력기구, 그리고 글로벌 발전·안보·문명·거버넌스 이니셔티브는 이러한 전환의 구체적 표현이다. 이 일련의 구상들은 단순한 대외정책 프로그램이 아니라,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보완'을 통해 인류운명공동체를 구현하려는 새로운 전략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향후 국제질서의 제도적 균형을 재편할 잠재력을 지니며, 특히 발전도상국 국가들의 연대와 제도화를 통해 다극체제의 구조적 안정성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즉, 중국의 국가 청사진은 자국의 경제적 부상에서 세계적 거버넌스 기여를 도모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공급망 재편·기술표준 경쟁·수출통제 강화라는 현실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각국은 '위험 분산(de-risking)' 전략을 넘어, 공급망 다변화와 선택적 협력, 그리고 기술·녹색전환 분야의 공동연구 체제 구축을 병행하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대중 견제나 디커플링이 아닌, 실질적 상호보완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국제정치경제의 관점에서 볼 때, 제15차 5개년 규획은 역내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중국의 기술자립화와 공급망 내재화는 한국·일본·대만의 산업구조에 직접적 파급을 미치며, 반도체·배터리·AI 등 첨단 분야에서 경쟁과 협력이 병존하는 '경쟁적 공진(co-opetition)' 구도를 강화시킬 것이다. 동시에 '경제적 상호의존'과 '안보적 자율성'이 병존하는 이중 구조 속에서 한중·중러·중아세안 관계의 복합적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내수 확대와 소비구조 고도화는 역내 국가들에게 새로운 시장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술혁신과 전략조정의 압력도 함께 가하고 있다.
결국 제14차 5개년 규획이 불확실성 속에서도 구조적 전환의 토대를 마련한 '전환기(preparatory phase)'였다면, 제15차 5개년 규획은 이를 제도화하고 질적 성장을 실현하는 '실행기(implementation phase)'가 될 것이다. 중국의 향후 발전은 기술혁신·제도개혁·내수전환이라는 세 축을 얼마나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동아시아 질서 역시 이러한 중국의 전략적 방향성에 따라 산업구조와 외교패턴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신질생산력' 전략을 단순한 경쟁이 아닌 '구조적 공진의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기술·녹색·안보 분야에서 다층적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동아시아는 미·중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율적이고 안정된 질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상만,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