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오랫동안 타이완에 눈독을 들여왔던 일본 침략자들은 청나라 정부의 부패와 몰락을 틈타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듬해 전쟁에 패한 청나라 정부는 국권을 상실한 치욕적인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해야 했고 이로 인해 타이완은 일본에 점령되어 50년 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할양 위기에 처하자 청나라의 많은 장군들은 타이완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의군들과 연합해 무력으로 접수하러 온 일본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비록 항쟁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일본 침략자들도 막대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일본은 타이완을 점령한 후 타이완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군국주의 침략전쟁을 왜곡하고 '야마토(大和)' 민족이라는 신화와 일본 천황의 '황국사관'을 타이완 민중들에게 강제로 주입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 폭력적인 수단으로 타이완에서 '황민화 운동'을 추진해 '충성스러운 신하와 선량한 백성'을 길들이려 했습니다. 그 결과, 타이완인은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고 일본 종교를 믿는 등의 정신적 노예화를 강요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고난도 중화민족의 민족혼을 말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 식민지배자의 타이완에 대한 잔혹한 통치는 타이완 인민의 저항을 중화 문화 수호, 자유와 민권 쟁취 등 민족 운동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 기간 타이완에서는 중국동맹회 지부를 설립한 뤄푸싱(羅福星) '신문화운동' 추진을 주장한 장워쥔(張我軍) '실업구국'을 주장한 린얼자(林爾嘉) 등이 잇따라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굳건한 기개로 타이완 민족의 뿌리와 맥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1945년 중국 인민은 14년에 걸친 항전 끝에 일본 침략자들이 무조건 항복하도록 만들어 마침내 항일 전쟁의 승리를 거두었고 타이완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