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부는 2025년 12월 10일부터 이틀간 중앙경제업무회의를 개최하고 2026년 경제정책의 큰 방향과 '8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이번 회의는 중국의 제14차 5개년 규획(2021~2025)이 마무리되고 2026년부터 제15차 5개년 규획이 새로 시작되는 시점에 개최됐다는 점에서 정책 신호의 무게가 크다. 동시에 최근 중국 경제 지표가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와 투자 등 일부 영역에서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며 내년도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서 열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현재 중국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 공급은 견조한 반면 수요는 구조적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2025년 11월 규모 이상 공업 부가가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증가했으나 소매 판매는 1.3% 증가에 그쳤다. 지난 1~11월 고정자산 투자도 연간 누적 -2.6%로 감소했으며, 특히 부동산 개발 투자는 -15.9%로 큰 폭의 조정을 지속하고 있다. 물가도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7%로 조금 반등했지만, 생산자물가지수(PPI)는 -2.2%로 장기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회의에서는 내수 확대, 신성장동력 육성(AI+ 포함), 고품질발전(高質量發展)을 위한 개혁 강화(전국통일대시장 건설 및 '내권식·內卷式 경쟁' 정비), 대외 개방 확대와 디지털·그린 무역 촉진, 지역·도농 균형 발전, '쌍탄소(雙碳)' 기반 녹색 전환, 민생 안정(고용·교육·의료·출산), 부동산·지방 부채 등 리스크의 '안정적 해소' 등 2026년 8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중국의 내년도 경제정책의 핵심 방향은 "내수 확대·공급 혁신·리스크 관리의 동시 추진"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다음 세 가지 내용에 주목하여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내수 확대를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특징적인 것은 정책 중점이 소비 보조금 지급을 통한 소비 확대에서 주민 소비 능력 향상, 즉 소득 증대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이구환신(以舊換新, 노후 제품 교체) 등 보조금 성격의 소비 부양책에 상당 부분 기대어 왔는데, 내년에는 직접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도시 및 농촌 주민 소득 증대와 소비 능력 제고가 더 강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소득, 고용, 사회보장 정책을 연계하여 종합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둘째, 신질생산력(新質生產力) 기조 아래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신성장동력을 육성해야 한다는 방향이 더욱 분명해졌다. 징진지(京津冀), 창장삼각주(長江三角洲), 웨강아오대만구 (粵港澳大灣區) 등 기존 첨단산업 클러스터에 국제 과학기술혁신센터를 구축하여 혁신 역량을 더 강화하고 'AI+' 추진을 심화 및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투자 방식과 성과 평가 체계를 정교화하는 한편, AI 확산과 제조업 고도화를 추진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셋째, 고품질발전을 위한 개혁 강화가 보다 전면에 부상했다. 전국통일대시장 건설을 제도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내권식 경쟁(소모적 과잉 경쟁)’에 대한 대응이 정책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과도한 가격경쟁과 중복투자가 기업의 수익성을 훼손하고 디플레이션 압력을 키운다는 인식 아래, 2025년부터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신에너지 자동차 기업 등 과잉 경쟁업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가격법 개정 등 제도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2026년에는 산업별 경쟁 질서·표준·규제와 함께 지방정부의 투자 행태까지 포괄하는 더 직접적인 정책 개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경기부양의 "규모"보다 정책의 "방향(내수 확대·공급 혁신·리스크 관리의 동시 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對)중국 산업·통상 전략에 주는 기회와 도전을 살펴보고 변화된 상황에서 한중 협력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 중국의 내수 확대 및 서비스 부문 성장 기조는 한국의 대중 진출과 수출 구조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제조업 중간재와 자본재 중심의 한국의 대중국 수출구조는 단기간에 급격히 변화하진 않겠지만 중국이 서비스 분야 개방과 디지털 무역 확대를 병행하는 만큼 이 분야에 대한 대중 수출 기회 확대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한중 관계가 개선되는 분위기 속에서 콘텐츠, 관광, 헬스케어, 교육, 프리미엄 소비재 등 소득·경험형 수요를 겨냥한 진출 전략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특히 중국이 소득 증대와 물가 회복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가계의 구매력 회복이 정책 성공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둘째, 중국은 로봇·AI·첨단 제조의 응용 확산을 전면에 놓는 동시에 '내권식 경쟁' 정비와 전국통일대시장 제도 정비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 내부의 과잉 경쟁을 억제하는 한편, 규모 통제와 질적 경쟁을 바탕으로 표준화와 품질 향상을 추진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AI·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은 기술격차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시장으로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거시적으로 보면 한국엔 '중국 수요 회복'의 상방 요인과 '중국 경쟁력 제고'의 하방 요인이 공존한다. 최근 한국의 대중 수출은 반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대부분 반도체 단가 상승의 효과이다. 2026년에도 글로벌 통상 환경, IT 사이클, 중국 내수 회복 속도라는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할 것이므로 정부와 기업은 “중국 내수 회복”에 따른 기회요인 발굴 정책과 "중국 경쟁력 제고"를 고려한 관리 정책을 다양한 시나리오로 모색하여 수출·투자·공급망을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한중 관계 개선 흐름에서 한중 협력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11월 한중 정상회담은 한중 관계에 새로운 기류를 불러왔다. 양국 정상은 회담을 통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재확인하고, 고위급 소통 정례화와 양해각서(MOU) 7건 체결 등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며 관계 복원의 신호탄을 쐈다. '관리된 협력'의 모델을 정착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관리된 협력'이란 우선 경제적 실익을 중심으로 협력 영역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중 FTA 고도화, 기후변화 공동 대응, 보건의료 협력, 디지털 통상 표준 추진 등 상호 이익이 분명한 분야에서 협력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례적이고 투명한 소통 채널을 공고화해야 한다. 2026년의 한중 관계는 완벽한 조화를 기대하기보다,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상호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혜와 실용주의가 요구된다.
글| 김재덕 한국산업연구원 베이징지원 수석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