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점과 책 시장, 도서전 같은 문화 공간의 기능은 주로 '책'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 국민 독서가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문화생활에 대한 기대와 요구 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이러한 독서 공간들은 점차 경계를 허물고 문화 체험과 상호 소통, 교류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변모되고 있다.

높이 솟은 책장으로 벽면을 장식한 진촹수청 차오톈궁 지점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앞다퉈 발 도장을 찍는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가 됐다.
서점, 책 파는 곳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난징(南京)시 친화이(秦淮)구에 거주하는 천웨(陳悅)는 매주 반나절씩 시간을 내 차오톈궁(朝天宮) 일대에 있는 대형 서점 진촹수청(錦創書城)에서 시간을 보낸다. "예전에는 특정 책을 사러 서점에 와서 그 책만 구매하고 금방 돌아갔다. 머무는 시간이 10분도 채 안 됐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책도 읽고 강연도 듣고 전시도 관람하면서 오후 내내 서점에 머문다. 이제 서점은 문화를 몰입식으로 체험하는 복합 공간에 더 가깝다."
천웨의 이 같은 느낌은 중국 오프라인 서점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온라인 서점의 공세와 디지털 독서의 확산 속에서, 한때 여러 전통 서점이 방문객 감소와 경영난을 겪기도 했다. "당시 가장 큰 고민은 고객이 서점에 와서 책을 사고 나면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점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편하게 머물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알찬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부판(卜凡) 진촹그룹 판공실 주임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진촹수청은 '서점+'라는 다원적 융합 모델을 구축했다. 1층에는 독서 존과 카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을 배치해 독서와 함께 따뜻한 음료를 즐기고 생활용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고, 2층에는 소형 테마 전시 공간과 고양이 카페, 키즈존을 마련해 책을 읽고 싶은 어른들과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난징 최고의 스카이라인 포토 존'으로 꾸며진 루프탑은 독서와 도시 경관을 완벽하게 결합해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다양한 업종의 융합을 통해 독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서점이 더 이상 '일회성 소비 공간'이 아니라 자주 찾고 싶은 문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부 주임의 소개에 따르면 2022년 개장 이후 진촹수청은 난징 도심에 서로 다른 테마의 분점 3곳을 열었으며, 누적 방문객 수는 수백만 명에 이른다. 이렇게 다양한 업종이 융합된 운영 방식은 서점에 상당한 수익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서점의 문화적 가치를 더 돋보이게 했다.
최근 몇 년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트래픽 흐름이 전통적인 서점 업계의 모습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일부 소규모 독립 서점은 샤오훙수(小紅書)와 더우인(抖音)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콘텐츠 공유나 블라인드 북 큐레이션 등을 통해 먼저 인지도를 쌓은 뒤, 이를 기반으로 오프라인으로 매장을 열어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새로운 운영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 젊은 점주들은 더 이상 손님들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 화면에 자신만의 '감각적인 브랜드 공간'을 먼저 구축하고 이렇게 쌓은 관심과 인기를 실제 매출과 방문으로 이어지게 한다. 상하이(上海)에 있는 FERM서점과 샤오중(小種)서점이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서점 점장이 되기 전 리 씨는 샤오훙수에서 팔로워 15만 명을 보유한 독서 크리에이터였다. 그는 프로필 소개란에 일찌감치 "언젠가 나만의 서점을 갖겠다"는 바람을 적어두었다. 그는 평소 독서 소감을 공유하는 한편 취향에 맞춘 블라인드 북 패키지를 선보였는데 온라인 서점에서 매달 수백 세트가 판매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워 물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온라인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그는 오프라인 서점을 여는 선택을 했다. "오프라인 공간이 주는 온기는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독자들과 직접 마주 앉아 소통하고 싶었다."
2023년 7월 리 씨의 FERM 서점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소식을 접한 온라인 팬들은 응원차 일부러 서점을 찾았고 '익숙한 닉네임'들은 하나둘 '익숙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렇게 서점은 안정적인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무탄(穆坦)은 그의 온라인 계정의 오랜 팬으로 지금까지 열 차례 넘게 블라인드 북을 구매했다. "출산을 앞두고 산후조리 기간에 읽을 책을 사고 싶었는데 태교 선물이라며 두꺼운 책 한 권을 골라줬다. 내 취향이지만 정작 직접 고르지는 못할 책을 골라준다." 현재 무탄은 FERM 오프라인 서점의 단골이 됐고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단순한 손님을 넘어 친구가 됐다. "독서는 원래 매우 개인적인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오히려 서로 교류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더 필요로 한다. 서점과 독서 크리에이터의 존재 의미는 흩어져 있는 독자들이 서로를 발견하게 하는 데 있다." 리 씨는 이렇게 말했다.
샤오중서점 역시 감성적인 경험을 앞세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왔다. 정식 개점 전부터 점주 판판(潘潘)은 소셜미디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소수 취향의 도서 목록을 공유하고, 책을 고른 이유를 이야기처럼 풀어내는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같은 취향의 수많은 독자를 끌어모았다. 상하이시 징안(静安)구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온라인 서점에서 보여준 이런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은 그대로 이어졌다. 매장에는 '소통 게시판'과 '책 교환 책장'을 마련해 독자들이 독서 소감을 남기거나 헌책을 가져와 다른 책으로 바꿔 가는 작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또한 서점은 오랫동안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에게 체험형 일자리를 제공해, 함께 책을 정리하고 블라인드 북을 포장하는 등 서점을 통해 아이들에게 작지만 따뜻한 성장의 공간을 마련해 줬다.
대도시 서점들이 변화와 혁신으로 분주한 사이, 중소 도시의 서점들도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 매주 주말이면 산시(山西)성 진청(晉城)시 양청(陽城)현에 있는 더즈(得之)도시책방에는 공익적 성격의 어린이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적인다. 왕위빙(王育兵) 점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중소 도시 서점을 찾는 고객은 대부분 그 지역에 사는 학부모와 아이들이어서 고객층의 변동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독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고, 매주 그림책 읽기나 이야기 나눔터 같은 공익적 성격의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왕 점장은 처음에는 참여 아동이 열 명 남짓이었지만, 직접 가정을 찾아다니며 부모들에게 아이와 함께 체험해 볼 것을 권유한 끝에 입소문이 퍼졌고, 지금은 회차마다 150명 이상의 아이가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 점장은 앞으로 서점에 무형문화유산 체험 교실과 청년 야간학교 등 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 방식을 더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점을 이 도시에서 책과 문화를 가장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독서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게 하고 싶다."
'책을 파는 곳'에서 '체험하는 곳'으로, '일방적 전달'에서 '쌍방향 소통'으로. 중국 각지의 서점들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지탱하는 문화적 쉼터가 되고 있다. 쑨서우산(孫壽山) 중국 음향·영상 및 디지털 출판 협회 이사장의 말처럼 서점의 변신은 경영 방식의 혁신을 넘어 문화 서비스의 업그레이드이며, 이는 독서를 '사적인 행위'에서 '함께 하는 체험'으로 확장하고, 책의 향기가 삶의 곳곳에 퍼지도록 했다.

2025 '나와 지단' 베이징 책 시장에 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책 시장, 헌책 시장에서 문화 시장으로
베이징(北京) 사람들의 책과 관련된 기억 속에 지단(地壇) 책 시장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옛날 어른들은 헌책 노점에서 풍기던 잉크 향을 기억하고 중년층은 어린 시절 보던 이야기 그림책인 연환화(連環畫)를 떠올리며, 젊은 세대는 작가와 가까이서 교류할 기회를 얻길 기대한다. 서로 다른 세대의 기억이 이곳에서 교차하며 베이징만의 고유한 문화적 정취를 빚어낸다.
2025년 지단 책 시장은 눈에 띄는 성적을 거뒀다. 11일 동안 방문객 80만 명 이상을 끌어모았고, 도서 판매액은 1억 위안(210억 원)을 돌파해 전년 동기 대비 37.8% 증가했다. 디지털 독서가 보편화된 오늘날 이 같은 수치는 더 돋보인다. 천닝(陳寧)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베이징시위원회 문화·관광·보건·체육 및 문화·역사위원회 부주임은 "이는 디지털화 시대에 종이책 독서가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대체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한다"고 평가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지단 책 시장의 인기는 우연이 아니라 전 국민 독서가 사람들 마음에 깊이 뿌리내린 결과이자 전통 책 시장의 성공적 변신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과거의 간이 천막형 매장과는 달리 오늘날 지단 책 시장은 공원에 자리한 몰입형 '서재'에 가깝다. 지단의 전통 건축 유산과 독서 문화를 절묘하게 결합한 것이다. "일부러 방택단(方澤壇), 황기실(皇祇室) 등 고건축 주변에 부스를 설치해 독자가 책 시장을 구경하면서 고건축의 아름다움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고건축을 감상하고 문화를 음미하는'세 가지 경험'을 함께 제공하려는 취지다." 지단 책 시장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 개성 있는 서점과 출판사들도 기존의 판매 부스 방식에서 벗어나 테마가 뚜렷한 독서 공간을 조성했다.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의 '역사 회랑', 중국국가지리의 '자연을 보는 눈', 베이징출판그룹의 '베이징 문화 체험관' 등은 제각기 개성 넘치는 공간을 마련해 독자가 책을 고르면서 몰입식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단 책 시장의 하이라이트는 '헌책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지혜'라는 콘셉트의 전문 코너를 마련한 것이다. 중국서점 등 고서·헌책 전문 기관과 협력해 전문 코너를 만들고 오래된 책들이 새로운 독자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독자는 70~80년대의 희귀 판본을 발견할 수도 있고, 이전 독자의 필기가 남아 있는 중고 서적도 만날 수도 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책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독자를 이어주는 감정의 연결고리가 된다. 마음에 드는 헌책을 찾으러 일부러 방문했다는 한 독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헌책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책장에 남겨진 필기와 사이에 끼워둔 오래된 책갈피는 이전 주인의 독서 궤적을 말해준다. 이런 만남은 새 책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지단 책 시장이 도시의 문화적 기억을 담은 따뜻한 매개체라면, 2026 신춘·하이뎬 서향 묘회(新春·海淀書香廟會)는 '책 향기'와 '설 분위기'를 완벽하게 융합해 춘절(春節, 중국 음력 설) 기간 독서의 향연을 선보였다. 춘련(春聯, 새해를 맞아 대구·對句로 된 문구를 적어 붙이는 종이 장식), 복(福)자, 세화(年畫, 설에 복을 빌며 붙이는 그림), 신춘 테마 도서를 전시·판매하는 '신춘 책 시장'과 경운대고(京韻大鼓, 북 반주 기반의 베이징 전통 설창·說唱 예술), 평서(評書, 장편의 이야기를 구연하는 민간 예술), 아동극 등 다양한 문화 공연이 펼쳐지는 '책 향기 무대', 유명 작가를 초청해 현장 사인회와 복자를 써주는 '작가의 복 나눔 행사'까지. 하이뎬 서향 묘회는 전통 묘회의 활기와 독서 문화의 고상한 정취를 결합해 독특한 매력을 자아냈다.
전통문화 열풍에 힘입어 서향 묘회에서 민속 관련 도서가 인기 품목 중 하나로 떠올랐다. "전통 명절과 세시 풍속을 소개하는 그림책만 하루에 200권 넘게 팔린다." 묘회에 참가한 베이징출판사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전통 명절 풍속을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책을 고르러 오는 학부모들이 많다." 문의와 구매를 위해 찾아온 학부모와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부스 앞, 직원은 질문에 세심하게 답하는 한편 몸을 낮춰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에 담긴 세시 풍속 삽화를 넘겨보며 춘련과 복자의 유래와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아이들이 이야기에 푹 빠지자 직원은 매대 아래서 붉은 종이와 붓을 꺼내 직접 복자 쓰는 법을 가르친다. "복자는 둥글게 써야 새해가 더 순탄해진단다." 이런 직접적인 소통이야말로 책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부스는 며칠 동안만 운영되지만 책을 매개로 이루어진 만남은 오히려 이런 '한정된 시간' 때문에 더 소중하고 쉽게 재현할 수 없는 '책 시장에서의 기억'이 됐다.

상하이 도서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웨제(閱界) 야시장'이 많은 독자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도서전, 업계 행사에서 모두의 축제로
과거 중국의 도서전은 업계 교류와 판권 거래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경계를 넘어 도서 전시와 판매는 물론 문화 교류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독서 문화 확산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됐다.
2025년 7월 제15회 장쑤(江蘇)도서전이 쑤저우(蘇州) 국제엑스포센터에서 개최됐다. 장쑤도서전의 가장 큰 특징은 성(省) 전역이 연계한 운영 방식이다. 쑤저우 국제엑스포센터를 주 행사장으로 삼고 성 내 구(區)를 두고 있는 13개 지급시(地級市)의 220여 개 오프라인 서점이 함께 연계 행사장을 운영해, 장쑤 각지에 있는 독자들이 동시에 도서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예전에는 도서전이라고 하면 대도시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소도시의 서점에서도 도서전의 할인 도서를 살 수 있고 온라인으로 작가 강연도 볼 수 있다." 옌청(鹽城)시 젠후(建湖)현 헝지(恆濟)진에 사는 독자 왕젠쥔(王建軍)은 온라인으로 작가 비페이위(畢飛宇)의 강연을 시청하고 오랫동안 눈여겨봐 온 <마사지사(推拿)> 중국어 소장판도 구매했다. 장쑤도서전 조직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도서전은 '온라인+오프라인' 융합 모델을 새롭게 도입했다. 주 행사장의 흥미진진한 행사를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각지의 오프라인 서점들은 도서 전시·판매와 독서 문화 확산 등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독서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일상의 일부로 만들었다.
쑤저우 주 행사장에는 18개의 테마 전시 구역이 마련됐고 중국 전역의 출판·유통사 400여 곳이 10만 종 이상의 도서를 선보였다. 2025년 처음 마련된 '헌책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지혜' 전시 구역에서는 중국 최대 고서적 전문 중고 거래 플랫폼 공부자구서망(孔夫子舊書網)이 장쑤 지역 문화와 관련된 고서 1000여 권을 전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진귀한 책은 송(宋)나라 시기 쑤저우 출신의 선현 범중엄(范仲淹)이 쓴 <범문정공척독(范文正公尺牘)>으로 명(明)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장쑤 문정서원(文正書院)에서 판각한 목판본이다.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 고서는 가격이 68만 위안에 달해 이번 도서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전시품으로 꼽혔다. 공부자구서망 직원은 현장에서 독자들에게 판본 식별부터 판각 기법 감상까지 고서 관련 지식을 설명하며 빛바랜 책장에 새 생명을 부여했다.
장쑤도서전 폐막 한 달 뒤 '중국 주요 신간 도서 발표의 장'으로 불리는 상하이도서전이 개막해 약 40만 명의 독자를 끌어모았다. 이곳에서는 방대한 규모의 도서를 전시·판매할 뿐 아니라 작가와의 대화, 학술 세미나, 가족과 함께하는 독서, 무형문화유산 체험 등 1000여 차례 이상 다양한 독서 행사가 진행되어 다양한 연령층의 각기 다른 관심사를 가진 독자가 이곳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찾았다.
12세 상하이 소년 왕훙자(汪宏嘉)와 베이징에 사는 72세 류(劉) 할머니는 60살이라는 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안고 도서전을 찾았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중학교 1학년이 되는 왕훙자는 세기출판관 특별 기획 전시 코너에서 자신의 천 가방 위에 두꺼운 <둔황학(敦煌學) 대사전(제2판)>을 놓고는 주변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 자 한 자 사전의 표제어를 베껴 쓰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둔황학에 아주 관심이 많다. 평소 접하는 책은 비교적 내용이 단순한 편인데 이곳에는 더 깊이 있는 둔황학 연구 자료가 있어서 관심 있는 내용은 옮겨 적으면서 천천히 공부하고 싶다." 왕훙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둔황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세 번의 겨울방학 동안 둔황을 찾아 영하의 동굴 안에서 몇 시간씩 경전을 베껴 쓰고 벽화를 모사했다. "동굴 안은 추웠지만 내 마음은 뜨거웠다. 앞으로 훌륭한 둔황학 연구자가 되고 싶다."
상하이사서출판사(上海辭書出版社)의 도움으로 왕훙자는 상하이도서전 일정을 마치고 막 공항으로 향하던 <둔황학 대사전(제2판)> 부편집장이자 베이징대학 교수인 룽신장(榮新江)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왕훙자는 평소 존경하던 둔황학 대가와의 통화에 다소 긴장했었다며 "룽 교수님이 쓰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둔황을 찾다(滿世界尋找敦煌)>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직접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도 했다"고 말했다. <둔황학 대사전(제2판)> 편집자 자오항(趙航)은 "어린 나이임에도 질문의 수준이 굉장히 전문적이었다. 둔황학 연구의 앞날이 밝다"며 감탄했다.
평생 책과 함께해 온 독자가 보여주는 독서에 대한 열정 역시 어린 소년 못지않은 깊은 울림을 준다. 72세의 류 할머니는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일부러 찾아와, 이른 아침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도서전으로 향했다. <해방일보(解放日報)>의 문화면 <조화(朝花)>가 주최한 문예평론 선집 출간기념회 '현실에 대한 호응, 문학의 입장' 현장에서 류 할머니는 여행용 가방을 책상 삼아 꼼꼼히 메모하고 있다. 수첩에는 이번 도서전의 행사 일정, 구매 예정 도서, 상세 일정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나는 '상하이에서 태어난 베이징 사람'이라 상하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매년 상하이도서전에 방문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류 할머니는 퇴직 후 중국의 우수한 전통문화에 큰 관심을 두게 됐고, 동시에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 같은 새로운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독서는 젊음을 유지해 주고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게 해준다. 도서전은 지식을 얻고 생각을 나누는 중요한 플랫폼이다."
과거 우리는 그저 마음에 드는 책을 찾기 위해 서점과 책 시장, 도서전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 체험을 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결이 비슷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현재 중국에서는 독서의 경계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으며, 독서가 종이 위의 글자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문화생활 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글|돤페이핑(段非平)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