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중국이 1992년 8월 24일 정식으로 수교한 지 올해로 34년을 맞았다. 수교 당시만 해도 양국은 오랜 기간 단절됐던 관계를 새롭게 출발시키는 단계에 있었지만, 지난 34년 동안 한중 관계는 외교·경제·무역·문화·관광·인적 교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빠른 발전을 거듭했다. 올해 수교 34주년을 맞아 양국 사회 각계에서 축하와 교류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지난 34년의 성과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협력을 기대하는 의미가 크다.
1992년 한중 수교는 냉전으로 단절됐던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양국 지도자들은 이념적 차이와 과거의 갈등을 넘어 양국의 공동 이익을 선택했다.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통해 새로운 협력의 문을 열었고, 이는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 발전에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수교 이후 양국 관계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빨랐다. 양국 관계는 1992년 우호협력 관계에서 출발해 1998년 '21세기를 향한 협력 동반자 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거쳐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이는 한중 관계가 단순한 양자 간 경제·통상 관계를 넘어 지역과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협력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경제 분야에서의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수교 당시 약 50억 달러에 불과했던 한중 교역 규모는 2025년 약 3312억4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고, 한국 역시 중국의 중요한 교역·투자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에는 한중 경제협력의 성격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양국의 산업구조가 상호 보완적이라는 점이 협력의 중요한 기반이었다면, 이제는 기술과 산업 분야에서 경쟁이 동시에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중 경제협력은 단순한 생산·교역 확대를 넘어 인공지능(AI), 디지털 경제, 첨단 제조업, 친환경 산업, 바이오·헬스케어 등 새로운 성장 분야에서 협력 기회를 발굴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중요한 협력 플랫폼이다. 2015년 발효된 한중 FTA에 이어 현재 서비스·투자 분야를 포함한 2단계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들어 양국은 협상을 잇달아 개최하면서 후속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양국 상품무역 규모가 이미 막대한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서비스와 투자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한중 경제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인적 교류 역시 지난 34년 동안 한중 관계의 가장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다. 수교 초기에는 양국 국민이 상대국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지만, 이제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사람들은 양국 사회에서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유학생, 관광객, 기업인, 연구자,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상대국을 방문하고 서로의 사회와 문화를 경험하면서 양국 국민 사이의 이해도 넓어졌다.
문화와 민간 교류의 발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올해 수교 34주년을 맞아 베이징에서는 '한중 동행 34주년, 음악으로 만나다'를 주제로 기념 음악회가 열렸고, 양국의 전·현직 외교관과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지난 34년의 동행을 되돌아봤다. 노재헌 주중 한국대사는 지난 34년 동안 사람과 사람이 오가고 기업과 기업이 함께 성장했으며 양국 국민이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청소년 교류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수교 34주년을 맞아 8월 21일부터 24일까지 한국에서 열린 한중 청소년 풋살 문화교류 캠프에는 한국과 중국의 청소년·학부모·관계자 등 700여 명이 참가했다. 양국 청소년들은 풋살 경기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교육 현장을 함께 경험하면서 스포츠를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교류는 정치·외교적 상황과 관계없이 미래 세대가 직접 상대국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중국 외교부 역시 수교 34주년을 맞아 한중 양국이 지난 34년 동안 정치·경제·무역·인문 교류 등에서 전면적이고 빠른 발전을 이뤘으며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한중 관계가 지난 몇 년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드 문제, 미·중 전략경쟁 심화, 공급망과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쟁 등은 양국 관계에 새로운 긴장 요인을 만들어냈다. 경제적으로도 과거의 상호 보완 관계에서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양국 관계의 협력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 때문에 더욱 안정적이고 성숙한 한중 관계가 필요하다. 실제로 올해 들어 양국 고위급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으며, 한중 FTA 2단계 협상도 재가동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무역·투자·공급망뿐 아니라 AI, 녹색 전환, 디지털 경제, 첨단 장비, 실버경제 등 새로운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앞으로의 한중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협력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현실에 맞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양국은 경쟁할 분야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되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과감하게 협력하는 실용적인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외교적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민간 교류가 위축된다면 양국 국민 사이에 오해와 거리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청소년·대학생·언론인·문화예술인·체육인·지방정부 등 다양한 계층의 교류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양국 관계가 일시적인 외교 갈등에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사회적 기반을 갖출 수 있다.
한중 수교 34주년은 지난 성과를 기념하는 날인 동시에 앞으로의 30년을 준비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34년 전 양국 지도자들이 냉전의 장벽을 넘어 수교를 선택했던 것처럼, 오늘의 한중 관계 역시 눈앞의 갈등에만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공동 이익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글: 중국망 한글판 전문가 최경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