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중요 인물(3)

정화 (鄭和)

정화(鄭和, 1371~1435년)는 명(明)대의 환관이었다. 서기 1405~1433년의 28년 동안에 7차례에 걸쳐 황제의 사절로 방대한 선대를 이끌고 서양에 진출하여 30여 개 국을 방문했고 별동대는 아프리카의 동해안과 홍해 해구에까지 이르렀다.

이시진 (李時珍)

명(明)대의 의학가 이시진(李時珍, 1518~1593년)은 자기의 저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1,892종의 약물을 수록하였는데 그 중 신약 374종, 약 처방 1만 1,096개를 수집하였고 정미한 삽화 1,111폭을 그려넣어 수 천 년 동안의 중국 의약학 성과를 체계적으로 총화해놓았다.

강희 (康熙)

강회(康熙)제 현화(玄燁, 1654~1722년)는 8살에 등극하여 13살부터 친정을 했다. 그는 대만(타이완)을 통일하고 제정 러시아의 대외 확장을 억제하였으며 티베트의 지방 관리를 중앙정부에서 최종 결정하는 등 일련의 규제를 제정하였다. 그리고 황무지 개간을 장려하고 하천을 정비했으며 경항(京杭)운하를 막힘없이 잘 통하도록 하였다.

이자성(李自成)

이자성(李自成, 1606~1345년)은 섬서(陝西) 북부의 농민 출신으로 1620년, 농민봉기에 참가하여 ‘틈왕(闯王)’으로 추대되었고 1644년 3월, 북경(배이징)을 공략하여 명(明) 왕조를 멸말시켰다. 후에 청(淸)나라 군사가 산해관을 쳐들어오자 이자성은 북경으로 퇴각하였고 호북(湖北)에서 사망했다.

홍수전(洪秀全)

홍수전(洪秀全, 1814~1864년)은 1851년에 봉기를 영도하여 태평천국을 창립하고 ‘천왕’이라 자칭하였으며 청(淸) 왕조를 뒤엎으려 시도하였다.서기 1853년 태평천국은 남경(난징)을 공략하고 남경에 수도를 세웠다. 후에 봉기는 실패하였으며 그는 이에앞서 1864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쑨중산(孫中山)

쑨중산(孫中山, 1866~1925년)은 중국혁명의 선구자로서 중국 동맹회를 조직, 설립하고 ‘민족ㆍ민권ㆍ민생’의 삼민주의를 내놓았다. 1911년 민중을 영도하여 청 제국을 뒤엎기 위한 ‘신해혁명’을 일으키었고 중화민국의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1912년, 동맹회를 중국 국민당으로 개편하였고 1924년에는 ‘혁명군을 창건하여 중국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하자’는 취지로 황푸(黃捕)육군사관학교를 창립하여 많은 정치인재들을 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