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간쑤(甘肃)성 우웨이(武威)시 구랑(古浪)현 황양촨(黄羊川)진 스청(石城)촌 빈곤가구인 쉬춘(胥存)씨 일가가 해발 2400미터의 한랭지역에서 구랑현 녹지생태 마을로 이주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이들이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다시 들여다 보았다.
사진설명: 위 사진은 쉬춘씨 일가의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간쑤성 우웨이시 구랑현 녹지생태마을에 마련된 새집에 도착했다. (드론 촬영) 아래 사진은 집을 가득 실은 트럭이 간쑤성 우웨이시 구랑현 황양촨진 스청촌 쉬춘씨의 옛집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2018년 2월 6일 드론 촬영)
구랑현 녹지생태마을에 위치한 새집에서 쉬춘씨가 집안 화초에 물을 주고 있다. (4월 7일 촬영)
봄햇살 가득한 3월, 녹지생태마을에도 봄꽃이 활짝 피어나면서 봄기운이 물씬 풍겨나고 생기를 되찾게 되었다. 쉬춘씨는 취재하러 온 기자를 친절하게 맞이했다. 막 이사올 때와 달리 집안에는 LED 텔레비전이 생겼고 화초들도 가득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이런 생활은 상상조차 못했다!” 쉬춘씨는 예전에 산 위에서 살 때는 식량이 떨어질까, 눈비라도 오면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달고 살았는네 산 아래로 이사 온 뒤부터는 이런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위 사진은 쉬춘씨 일가가 새로 이사 온 구랑현 녹지생태마을 모습이다. (3월 10일 드론 촬영) 아래 사진은 쉬춘씨 일가가 이사오기 전 살았던 구랑현 황양촨진 스청촌의 모습이다.(2018년 2월 6일 드론 촬영)
쉬춘씨의 옛날 집이 있었던 구랑현 남부산지의 기후는 가물고 토지는 척박해 두 식구가 20여 무의 땅을 일궈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돈을 벌기 위해 남편은 외지에 나가 일하다 2004년 불행한 사고로 누워 지내게 되면서 집안에는 소득원이 사라지게 되었다. 쉬춘씨 홀로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어렵게 버텨 나갔다.
그러던 중 2012년부터 구랑현은 이주를 통한 빈곤퇴치사업을 실시하여 15300가구 62400명의 빈곤인구를 산 아래 마을로 이주시켰다. 2018년 2월, 쉬춘씨 일가는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스청촌을 떠나 산 아래로 내려왔다.
오랫동안 고생이 많았지만 단한번도 힘들다거나 고생스럽다고 내색한 적이 없는 쉬춘씨는 이사 전과 후에 두번 눈물을 흘렸다.
사진설명: 위 사진은 쉬춘씨가 새집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3월 10일 촬영) 아래 사진은 쉬춘씨가 이사오기 전 살았던 구랑현 황양촨진 스청촌에서 살림살이를 챙기고 있다.(2018년 2월 6일 촬영)
이사 오기 전, 쉬춘씨는 5000위안에 노새를 장에 내다 팔고나서 펑펑 울었다. 20년 동안 그녀를 도와 밭을 갈고 농사 일을 도와주었던 노새는 집안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노동력’이었다.
두번째 눈물은 산에서 내려오고 나서 얼마 안됐을 때 흘렸다. 새집 정리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집안을 정리하다가 잠깐 쉬고 있는데 새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 몰래 눈물을 훔쳤다. “내 평생 이렇게 넓고 환한 집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사진설명: 구랑현 녹지생태마을, 쉬춘씨가 마을 화원을 청소하고 있다. (4월 7일 촬영)
사진설명: 구랑현 녹지생태마을 관리사무소, 쉬춘씨가 출근을 위해 지문인식을 하고 있다. (4월 7일 촬영)
아픈 남편과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쉬춘씨는 고향을 떠날 수 없다. 아들은 제대 후 외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 현지 정부는 쉬춘씨네 형편을 듣고 최저생활보장 보조금과 장애인 연금 등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쉬춘씨 일가는 빈곤퇴치의 길에서 낙오되지 않았고 녹지생태마을 관리사무소에서 청소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사는 게 날로 좋아지고 있다. 쉬춘씨는 요즘 예전보다 더 자주 웃는다. “작년말 우리집은 드디어 가난에서 벗어났다!”
쉬춘씨의 산에 있는 20무의 척박한 땅을 어떤 기업이 모두 임대하기로 했고 산 아래 새로운 땅을 곧 분배받게 되었다. “가난에서 벗어나 조만간 샤오캉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쉬춘씨는 요즘 좋은 소식이 많아졌다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