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西安)사변

(항일전쟁)

Fecha de publicación:2015-11-16 | Publicado por:japanese.china.org.cn

시안(西安)사변

시안사변은 ‘쌍십이(雙十二)사변’으로도 불린다. 1936년12월12일 장제스(蔣介石)가 ‘양외필선안내(攘外必先安內,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선 먼저 내부를 안정시켜야 한다)’라는 반동 정책을 바꾸도록 간언하고, 내전 중지 및 공동 항일을 펼치기 위해 동북군(東北軍) 수장 장쉐량(張學良)과 서북군(西北軍) 수장 양후청(楊虎城)은 시안 화칭츠(華淸池)에서 병간(兵諫)을 일으켜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위원장 장제스를 억류했다. 당시 이 사건은 ‘시안병간’으로 불렸다. 중공중앙의 주도로 저우언라이(周恩來)등이 직접 시안으로 가서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성사시켰다. 장제스는 결국 ‘내전중지, 연공항일(停止內戰, 聯共抗日, 내전을 중지하고 공산당과 연합하여 항일하다)’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시안사변의 평화적 해결은 제2차 국공(국민당과 공산당)합작을 성사시켜 양당 간10년간의 내전을 종식시켰고 항일민족통일전선의 초보적인 형성을 이끌어냈다.

 

西安事变

西安事变,又称“双十二事变”。1936年12月12日,为了劝谏蒋介石改变“攘外必先安内”的反动政策,停止内战,一致抗日,东北军领袖张学良和西北军领袖杨虎城在西安华清池发动“兵谏”,扣留了时任国民政府军事委员会委员长的蒋介石,时称“西安兵谏”。在中共中央和周恩来同志的主导下,最终以蒋介石接受“停止内战,联共抗日”的主张而和平解决。

西安事变的和平解决促成了第二次国共合作,国共十年内战由此结束,抗日民族统一战线得以初步形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