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둥 개발 개방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2 | Publicado por:중국망

20세기 90년대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국내 개혁도 세차게 진행됐다. 중공중앙은 국내외 정세를 면밀하게 판단하고 개혁 발전 대세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상하이 푸둥(浦東) 지역을 개발 및 개방한다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 중국 개혁 개방의 심도 있는 추진에 새 장을 열었다.


1990년 4월 18일, 중공중앙과 국무원은 푸둥 개발 개방을 공식 선언했다. 뒤이어 상하이시위원회와 시정부는 중앙의 전략적 배치에 따라 '푸둥 개발, 상하이 진흥, 전국 봉사, 세계 지향'의 개발 방침을 제정해 푸둥은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는 '개혁의 샘플'이 됐다. 1991년 초, 덩샤오핑은 당시 상하이시위원회 서기이자 시장인 주룽지(朱镕基) 등에게 "푸둥 개발을 다잡고, 동요하지 말고, 계속 건설해 나가라" 고 당부했다. 199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상하이 푸둥 개발 개방을 필두로 창장 연안도시를 더욱 개방하고 상하이를 국제적인 경제, 금융, 무역 중심 중 하나로 성장시켜 창장 삼각주와 창장 유역의 경제 전체를 새롭게 도약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공산당 제15차,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도 개방 확대, 자주 혁신 등 분야에 서 푸둥이 선두에 설 것을 요구했다. 2005년 6월, 푸둥신구는 국가 종합체계개혁시험지구(綜合配套改革試點) 비준을 받았다. 이는 푸둥 개혁 개방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뜻한다. 중국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더 나가 푸둥신구가 중요한 역할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2009년 4월, 전 상하이시 난후이(南匯)구가 푸둥신구에 편입됐다.


신시대로 접어들어 중국공산당 제18차,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푸둥 개발 개방에 대한 요구를 명확히 했다. 중공중앙은 첫 자유무역시험지구, 첫 종합적 국가과학센터 등 국가의 전략적 과제를 푸둥에 부여하여 푸둥 개발 개방의 새로운 기상을 연출시켰다. 현재 푸둥은 전국 8000분의 1 면적에서 전국 GDP의 80분의 1, 화물 수출입 총액의 15분의 1을 창출하고 있다.


푸둥 개발 개방 30여년 동안 푸둥은 개혁 개방의 선두에 섰고 첫 번째 금융무역지구, 첫 번째 보세지구, 첫 번째 자유무역시험지구 및 임강신편구(臨港新片區), 첫 번째 외국인 독자무역공사 등 '전국 첫 번째'를 여럿 기록해 상하이 국제 경제 중심, 금융 중심, 무역 중심, 해운 중심, 과학기술 혁신 중심 건설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푸둥은 과거 농업 위주의 지역에서 기능 밀집, 요소 완비, 첨단 설비로 현대화된 새 도시로 변모했고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뤘으며 인민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 푸둥 개발 개방이 거둔 눈부신 성과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증거이고, 개혁 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가장 생동감 있는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