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문화대혁명’의 충격으로 10년 동안 중단된 중국의 대학입시인 가오카오(高考)가 회복되었다. 1977년 8월초, 덩샤오핑이 주재한 과학과 교육 업무 좌담회에서 회의 참가자들이 가오카오 즉시 회복을 주장했고 덩샤오핑이 이를 지지했다. 같은 해 9월, 교육부는 전국 고등교육기관 신입생 모집 업무회의를 소집하고 10년 동안 중단된 전국 고등교육 기관 신입생 모집 시험을 회복해 일괄 시험, 우수학생 우선 선발 방식으로 대학 입학 인재를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같은해 10월 12일, 국무원은 교육부 <1977년 고등교육기관 신입생 모집 업무에 관한 의견(關於1977年高等學校招生工作的意見)> 규정을 비준 및 전달하고 노동자, 농민, 상산하향 및 귀향 지식청년, 제대 군인, 간부, 당기 졸업생 등 조건에 부합하는 자는 모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1977년 가오카오 신입생 모집 시험은 겨울에 진행됐고 신입생은 다음 해 봄에 입학했다. 그해 570여 만명이 응시한 가운데 전국 대학과 전문대학에 신입생 27만 3000명이 모집됐다.
가오카오 제도 회복은 개혁 개방 교향곡의 서곡으로 몇 대에 걸친 사람들의 운명을 바꿨고 새로운 시기와 향후 중국의 발전과 도약에 양호한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가오카오 제도 회복으로 중국의 고등교육은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왔고, 기초 의무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국민경제 각 분야에서 시급한 전문 인력과 엘리트가 빠르게 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