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짱 평화해방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2 | Publicado por:중국망

시짱(西藏, 티베트)은 중국 영토에서 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1949년 말, 중국 인민해방군은 남서지역을 해방시킨 뒤 시짱 진군을 준비했다. 시짱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중앙인민정부는 당시 기존 시짱 지방정부에 베이징으로 대표를 파견해 시짱의 평화로운 해방에 관한 업무 논의를 하자고 통보를 여러 차례 보냈다. 시짱의 고위층 반동분자와 제국주의 세력의 방해로 기존 시짱 지방정부는 대표 파견을 계속 미루고 창두(昌都)지역에 지방군 주력부대를 배치했다.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은 창두 전투를 개시하고 창두를 해방시켜 시짱으로 진입하는 길목을 열었다. 시짱의 통치 집단은 빠르게 분화되고 시짱을 평화적으로 해방시키자는 대세가 형성되었다.


1951년 4월, 전 시짱 지방정부는 아페이·아왕진메이(阿沛·阿旺晉美)를 수석대표로 임명하고, 아페이·아왕진메이는 리웨이한(李維漢)을 수석대표로 한 중앙인민정부 대표단과 베이징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동시에 시짱의 지도자격인 판첸(班禪)과 관청 칸부청(堪布廳)의 전체 관료도 베이징에 도착해 평화에 대한 소망과 요구를 전했다. 양측 대표는 회담을 갖고 의견을 교환했으며 평등한 협상으로 여러 원칙적인 문제에서 합의에 도출했다. 5월 23일, <중앙인민정부와 시짱정부 평화로운 시짱 해방 방법에 관한 합의(中央人民政府和西藏政府關於和平解放西藏辦法的協議)>를 체결했다. 5월 24일, 마오쩌둥은 중난하이(中南海) 화이런탕(懷仁堂)에서 평화 협상에 참석한 시짱 대표단을 접견하고 성대한 연회를 열어 회담 성공을 축하했다.


시짱의 평화로운 해방은 중국 대륙의 통일과 시짱 인민이 제국주의 침략과 분열에서 벗어나 단결, 진보, 발전의 광명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시짱의 평화로운 해방은 시짱 민족 역사와 중국 민족 관계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