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대표대회제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2 | Publicado por:중국망

중국에 어떤 정치제도를 수립하느냐는 근대 이후 중국 인민이 직면한 역사적인 과제였다. 이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인민은 힘겨운 탐색을 거듭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가 됐다.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고 민족 진흥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인민과 수많은 뜻있는 인사들이 중국 국가 상황에 적합한 정치제도를 열심히 찾았다. 신해혁명 전, 태평천국운동, 양무운동, 무술변법, 의화단운동, 청말신정(清末新政) 등이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신해혁명 이후 중국은 입헌군주제, 군주제 부활, 의회제, 다당제, 대통령제 등 다양한 형식을 시험했고 각종 정치 세력과 그 대표 인물들이 속속 등장했으나 모두 정확한 답안을 찾지 못했다. 낡은 사회 기반을 건드리지 않은 자강운동, 각종 명목의 개량주의, 구식 농민전쟁, 부르주아계급 혁명파가 이끄는 민주주의 혁명, 서양 정치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각종 방안은 중화 민족의 국가를 구하고 민족의 생존을 도모하며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의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고 중국의 정국과 사회를 안정시키지 못했으며 중국의 국가 부강과 인민 행복에 제도적 보장은 더 말할 수도 없었다.


중국공산당은 창당일부터 중국 인민이 주인되기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실현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지극히 힘 들고 어려운 혁명 투쟁을 전개해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주의의 3대 산을 전복시키고 인민이 주인이 되는 신중국을 성립해 수많은 중국 인민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 됐다. 인민 민주는 중국공산당이 시종일관 높이 드는 기치이다. 인민의 주체지위를 존중하고 인민이 주인임을 보장하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1949년 9월, 임시 헌법 지위를 지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강령>은 신중국이 인민대표대회 제도를 시행한다는 것을 장엄하게 선포했다. 1954년 9월,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 속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했다. 인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다. 이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적인 정치제도인 인민대표대회제도가 수립됐다.


인민대표대회제도는 중국공산당이 영도하고, 인민이 주인이 되며, 의법치국(依法治國,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근본적인 정치제도이다. 민주집중제는 중국의 국가조직 형태와 활동 방식의 근본 원칙이다. 중국에서는 인민대표대회가 국가 권력을 일괄 행사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국가 최고 권력 기관이고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는 지방의 국가 권력 기관이다. 인민은 인민대표대회를 통해 국가 권력을 행사한다. 각급 인민대표대회는 모두 민주 선거로 탄생하고 인민에 대해 책임지며 인민의 감독을 받는다. 각급 국가 행정기관, 심판기관, 검찰기관은 모두 인민대표대회에서 탄생하고 인민대표대회에 책임지며 인민대표대회의 감독을 받는다. 국가기관은 결정권, 집행권, 감독권을 합리적으로 분업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 중앙의 통일적 영도 아래 지방의 능동성과 적극성을 충분히 발휘해 국가의 통일적이고 효율적으로 각종 사업을 조직추진하는 것을 보장한다.


인민대표대회제도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고, 중국 국가 관리 체계와 관리 능력을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정치제도다. 중국에서 인민대표대회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인류 정치제도사에서 중국 인민이 이룬 위대한 창조물이고, 근대 이후 중국 정치 생활이 뼈아픈 교훈에서 얻은 기본적인 결론이며, 중국 사회의 100여년 격렬한 변혁과 격동한 발전의 역사적 결과이고, 중국 인민이 주인이 되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60여년 동안 인민대표대회제도는 부단히 탄탄해지고 발전해 생기 넘치는 활력을 보여주었다. 실천은 이 새로운 정치제도가 중국 국가 상황과 현실에 부합하고 사회주의 국가 성격을 나타내며 인민이 주인이 되고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좋은 제도임을 충분히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