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전투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3 | Publicado por:중국망

1948년 가을, 인민 해방전쟁이 전국 승리의 전략적 결전 단계로 진입했다. 마오쩌둥을 핵심으로 하는 중공중앙은 전쟁 상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전략적 결전의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결전 방향을 정했다. 또한 전장별 특징에 따라 작전 방침을 정해 랴오선(遼瀋), 화이하이(淮海), 핑진(平津) 3대 전투를 연속 조직했고 3대 전투의 각 전투와 각 단계를 맞물리게 하여 인민 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8년 9월, 린뱌오와 뤄룽환(羅榮桓)이 지휘하는 동북 야전군 주력군과 지방 무장군 총 103만 명이 동북 인민의 지원 아래 진저우(錦州), 창춘(長春), 선양(瀋陽) 등지를 할거하고 있는 55만 국민당군을 향해 랴오선전투를 일으켰다. 전투는 52일 만에 승리로 끝나 동북 전역이 해방됐고, 동북 야전군을 강력한 전략적 예비군으로 만들어 핑진과 화북 전 지역 해방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했으며, 해방전쟁에 공업 기반을 갖춘 전략적 후방을 제공했다.

1948년 11월, 랴오선 전투가 끝나자 덩샤오핑을 서기로 한 총전선위원회가 화동야전군, 중원야전군, 일부 지방 무력 등 60만여명을 통합 지휘해 쉬저우(徐州)를 중심으로 동쪽의 하이저우(海州)부터 서쪽의 상추(商丘)까지, 북쪽의 린청(臨城, 현 쉐청(薛城))에서 남쪽의 화이허(淮河)까지 광활한 지역에서 대규모의 화이하이 전투를 일으켰다. 이 전투는 66일만에 승리로 끝나 해방군의 도강 작전과 더 나가 국민당 반동 통치의 중심지역인 난징과 상하이 해방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1948년 11월 말, 인민해방군은 린뱌오, 뤄룽환, 녜룽전 (聶榮臻)으로 구성된 핑진전선 총전위의 영도 아래 서쪽의 장자커우(張家口)에서 동쪽의 탕구(塘沽)와 탕산(唐山)까지, 베이핑(北平, 현 베이징)과 톈진(天津)을 포함한 지역에서 핑진전투를 일으켰다. 1949년 1월 31일, 베이핑이 평화롭게 해방됐다. 이 전투는 64일 동안 진행됐고 화북 전역이 기본 적으로 해방됐다.


랴오선, 화이하이, 핑진 3대 전투에서 적군 154만여 명을 섬멸해 국민당의 주요 군사 역량이 기본적으로 궤멸됐으며 해방전쟁의 전국 승리를 크게 앞당겼다. 전략적 결전에서 인민 군중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전선을 지원한 노동자가 886만 명에 달했고 들것 36만여 개, 차량 100만여 대가 동원됐다. 3대 전투로 대표되는 전략적 결전의 승리는 마오쩌둥 군사사상과 인민 전쟁의 위대한 승리이고 중국 인민 해방전쟁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이정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