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 승리 전야인 1945년 4월 23일부터 6월 11일까지,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가 옌안에서 개최됐다. 정식 대표 547명, 후보 대표 208명이 전국 121만 당원을 대표하여 대회에 참석해 새로운 중앙위원회를 선출했다. 대회에서 마오쩌둥이 <논연합정부(論聯合政府)>라는 제목의 정치 보고를, 주더가 <논해방구전장(論解放區戰場)>의 군사 보고를, 류사오치가 <당장 수정에 관한 보고(關於修改黨章的報告)>를 보고했고, 저우언라이가 <논통일전선(論統一戰線)>의 제목으로 연설했으며, 런비스와 천윈 등이 대회 발언을 했다.
대회에서는 정치결의안, 군사결의안, 새 당장을 통과시켰고, 당의 정치 노선을 제정했으며, 신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 분야의 강령을 제정했고, 중국 산업화의 거창한 임무를 제시했으며,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유리한 개인 자본주의를 적절하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당 문건에서 생산력을 기준으로 정당의 역사적 역할을 평가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회는 무장 투쟁, 통일 전선, 당 건설 경험을 정리하여, 장기적 투쟁에서 형성된 당의 3대 작풍을 심도 있게 논술했다. 즉 이론과 실제를 결합하는 작풍, 인민 대중과 긴밀하게 연결하는 작풍, 자아비판의 작풍이다. 대회 폐막식에서 마오쩌둥은 <우공이산(愚公移山)> 이라는 제목의 폐막사를 발표했다. 대회에서 통과된 신규 당장 규정은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모든 업무의 지침으로 삼음 으로써 마르크스 레닌주의 기본 원리와 중국 혁명을 결합한 역사적 도약을 처음으로 이루었다.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지도 사상으로 삼아 당장에 기록한 것이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의 역사적인 공헌이다.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는 중국공산당이 신민주주의 혁명 기간 소집한 매우 중요한 전국대표대회로 혁명이 새로운 전환점에 선 중요한 시점에서 당 전체를 제때 정확하게 영도해 항전 승리와 신민주주의 혁명이 전국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정치, 사상, 조직의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