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생산운동(大生産運動)은 항일전쟁 시기 중국공산당이 항일 근거지의 군인과 인민을 이끌어 전개한 대규모 생산 자구(自救) 운동이다.
1941년, 일본군의 미친 듯한 공세와 국민당 보수파의 포위 봉쇄, 자연재해로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항일 근거지는 재정과 경제 상황이 매우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중공중앙은 생산 자구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각 항일 근거지의 당정군학(黨政軍學) 인력과 인민이 이에 호응해 대규모 생산운동에 나섰다. 1942년 12월, 마오쩌둥은 산간닝변구 고위급 간부회의에서 <경제 문제와 재정 문제(經濟問題和財政問題)>의 보고를 하고 경제업무와 재정업무의 총 방침은 '경제 발전, 공급 보장'임을 설명하면서 해방구 군민이 대생산운동을 확실하게 전개해 자력갱생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군대, 정부기관, 학교의 자급경제 발전은 대생산운동 중의 창조물이다. 항일 민주정부는 여러 자급성 공업을 운영했고, 군대는 자급을 목표로 한 농업과 일부 상공업을 발전시켰으며, 농민은 농업 생산 발전에 나섰다. 각급 당정 간부도 대생산운동에 적극 나서 군중과 동고동락했다.
대생산운동의 활발한 전개로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해방구는 심각한 물질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항전 승리를 위한 물질적 기반을 다졌다. 동시에 당정군민의 관계가 긴밀해졌고, 자력갱생, 노력투쟁의 옌안 정신을 수립했으며, 경제 건설의 경험을 쌓았고, 경제업무를 할 수 있는 간부를 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