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퇀대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4 | Publicado por:중국망

1940년 여름, 일본 침략자의 '수롱정책(囚籠政策)'을 격파하고, 화북 전세를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며, 전국 항전 국면에 영향을 미쳐 국민당의 대일 타협과 투항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팔로군 총사령부는 화북 일본군이 점령한 교통 노선과 근거지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전투가 개시되면서 팔로군 105개 연대의 약 20만 명이 참전해 이를 '바이퇀대전(百團大戰, 백단대전)'이라고 한다. 1940 년 8월 8일, 팔로군 총사령부는 <전역행동명령(戰役行動命令)>을 하달하고 작전 병력을 구체적으로 배치했으며 8월 20일을 전투 시작일로 확정했다.


바이퇀대전은 2개의 적극적 진격 단계와 1개의 반 '소탕' 단계로 이루어졌다. 전투 1단계는 교통 습격, 파괴 총력전으로 정타이철도 파괴가 목표였다. 2단계는 교통 노선 양측을 계속 습격하고 근거지 내 적의 거점을 파괴하며 라이위안(涞源)·링추(靈丘) 등에서 전투를 일으키는 것이다. 3단계는 반 '소탕' 작전이다. 바이퇀대전은 약 4개월 동안 총 1824차례 전투를 진행해 일본군 2만여 명, 괴뢰군 5000여 명을 살상하고, 각종 대포 50여 문, 총기류 5900여 정과 군용 물자를 노획했다. 팔로군도 1만 7000여 명이 사망하는 대가를 치렀다.


바이퇀대전은 항전 이후 팔로군이 화북지역에서 일으킨 최대 규모의, 최장기간의 전략적 공격전으로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군인과 인민들의 항일 기세를 보여주었고 일본군 병력을 견제해 일본군의 '남하'를 지연시켰다. 또한 정면전장(正面戰場) 작전 지지와 시국 호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전투는 전 세계에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군대가 일본 침략에 저항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희망임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