쭌이회의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4 | Publicado por:중국망

1935년 1월 15일-17일, 중공중앙은 구이저우 쭌이에서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정치국 위원 마오쩌둥, 장원톈(張聞天), 저우언라이, 주더, 천윈(陳雲), 보구(博古)와 후보 위원 왕자샹(王稼祥), 류사오치, 덩파(鄧發), 허커취안(何克全,즉 카이펑(凱豐)), 홍군 총사령부와 각 군단 책임자인 류보청, 리푸춘(李富春), 린뱌오, 녜룽전(聶榮臻), 펑더화이, 양상쿤(楊尚昆), 리줘란(李卓然), 중앙 비서장 덩샤오핑이 회의에 참석했다. 군사 고문 리더와 통역관 우슈취안(伍修權)도 옵서버로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는 당시 가장 시급한 군사 문제와 조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좌'경 모험주의의 잘못과 폐해를 폭로·비판해 제5차 반 '포위토벌' 실패에 대한 결산을 하였다. 회의 후 장원톈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특히 마오쩌둥의 발언 내용에 따라 <중앙 적의 5차 '포위토벌' 반격 총결에 관한 결의안(中央關於反對敵人五次"圍剿"的總結的決議)>을 작성했다. 결의안은 홍군 작전에 관한 마오쩌둥 등의 기본 원칙을 긍정했고, 보구와 리더 등이 군사 문제에서 내놓은 일련의 잘못된 주장을 부정했다. 절대다수 동지의 의견과 요구에 따라 중앙서기처와 중앙혁명군사위원회를 개편하고 마오쩌둥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했으며 보구와 리더의 최고군사지휘권을 박탈했다. 장원톈이 보구를 대신해 중앙에서 총책임을 맡았고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군사를 책임졌다. 뒤이어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왕자샹으로 구성된 3인 군사지휘소조(軍事指揮小組)를 설립했다.


쭌이회의는 중공중앙에서 왕밍의 '좌'경 모험주의의 통치를 끝냈고 홍군과 중공중앙에서 마오쩌둥의 영도 지위를 확립했다. 쭌이회의는 중국공산당이 마르크스 레닌주의 기본 원리에 따라 자신의 노선, 방침, 정책 등 분야의 문제를 처음으로 독립적으로 해결한 회의로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 홍군과 당 중앙을 보전할 수 있게 했다. 이후 홍군은 패배에서 승리로, 위기를 안전으로 전환해 2만 5000리 장정을 승리적으로 마무리했다. 쭌이회의는 중국공산당과 중국 노농홍군 역사상 위대한 전환점으로 중국공산당이 정치적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