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혁명 근거지 5차 반 '포위토벌'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4 | Publicado por:중국망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혁명 근거지 건설과 발전은 장제스 반동정부의 통치를 위협해 국민당 반동파들을 두렵게 하였다. 1930년에서 1934년까지, 장제스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중앙 혁명 근거지와 샹간, 샹어간, 민저간(閩浙贛, 푸젠성·저장성·장시성) 등 근거지를 5차례 '포위토벌'했다.


1930년 10월, 장제스는 10만 병력을 동원해 '곧장 파고들며 몇 갈래로 나누어 협격한다'는 전술로 중앙 혁명 근거지에 대규모 '포위토벌'을 진행했다. 홍1방면군은 '적을 깊숙이 유인'하는 작전을 개시하여 적군 1만 5000명을 섬멸하고 적의 제1차 '포위토벌'에서 승리했다.


1931년 2월, 국민당은 다시 20만 군대를 동원해 '차근차근 진을 쳐 침착하게 싸운다'는 전술로 중앙 혁명 근거지에 대한 제2차 '포위토벌'을 진행했다. 홍군 3만 명은 마오쩌둥의 지휘 아래 역시 '적을 깊숙이 유인'하는 작전으로 5차례 연속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적의 제2차 '포위토벌'을 타파했다.


1931년 7월, 장제스가 직접 총사령관을 맡아 영국, 일본, 독일 군사 자문을 대동하고 병력 30만 명을 동원해 '곧장 파고드는 전술'을 사용하고 세 갈래로 나누어 중앙 혁명 근거지를 공격했다. 홍군은 다시 '적을 깊숙이 유인'하는 작전으로 '주력군은 피하고 적의 약한 부분을 쳐' 3개월 동안 적군 3만 명을 섬멸하고 적의 제3차 '포위토벌'에서 승리했다.


1932년 말, 국민당은 30개 사단 병력을 동원해 세 갈래로 나누어 중앙 혁명 근거지에서 제4차 '포위토벌'을 감행했다. 홍군은 저우언라이와 주더의 지휘 아래 마오쩌둥의 적극적인 방어 전략에 따라 양동작전(聲東擊西), 대군단 매복 공격, 우세한 병력을 집중시켜 포위 섬멸하는 작전을 펼쳐 적의 3개 사단을 섬멸하고 제4차 반 '포위토벌'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33년 9월, 장제스는 100만 군대와 200여 대의 항공기를 동원, 각 혁명 근거지에 5차 '포위토벌'을 진행했다. 그 중 중앙 근거지에 동원한 병력이 50만에 달했다. 왕밍(王明)의 '좌'경 모험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리더(李德) 등이 먼저 군사적 모험을 감행하는 책략을 펼치면서 적의 광폭한 진공앞에서 '필사주의'사투를 벌이다가 마지막에는 도주를 감행하여 중앙 홍군의 5차 반 '포위토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1934년 10월, 중앙 홍군 주력군은 중앙 혁명 근거지에서 철수해 전략적 이동을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