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소비에트공화국 성립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4 | Publicado por:중국망

1930년 10월부터 1931년 9월까지,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홍군 제1방면군이 세 차례 연속 국민당 군대의 '포위토벌' 반격에서 승리를 거두어 중앙 혁명 근거지가 공고해졌고, 어위완(鄂豫皖, 후베이성·허난(河南)성 ·안후이(安徽)성), 샹어시(湘鄂西, 후난성·후베이성 서부), 샹어간(湘鄂贛, 후난성·후베이성·장시성) 등 근거지도 상당한 규모로 발전했다. 중공중앙은 간난(贛南, 장시성 남부)와 민시 근거지를 기반으로 소비에트 중앙정부를 수립하기로 했다.


1931년 11월 7일-20일, 중화소비에트 제1차 전국대표 대회가 개최돼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성립을 선언했다. 대회에서 <중화소비에트공화국 헌법 대강(中華蘇維埃共和國憲法大綱)>, <중화소비에트공화국 토지 법령(中華蘇維埃共和國土地法令)>, <중화소비에트공화국 노동법(中華蘇維埃共和國勞動法)>, <중화소비에트공화국 경제 정책에 관한 결정 (中華蘇維埃共和國關於經濟政策的決定)> 등 중요한 결의와 법령이 통과됐고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샹잉, 장궈타오 등 63인이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돼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했다. 마오쩌둥이 중앙집행위원회 주석, 샹잉·장궈타오가 부주석으로 선출되었다.


대회에서 통과된 <헌법 대강>에서는 중국 소비에트 정권은 노동자와 농민이 건설한 민주독재국가라고 규정했다. 소비에트의 모든 정권은 노동자, 농민, 홍군 사병 및 수고한 모든 민중에 속한다. 소비에트 정권 영역 안에 있는 노동자, 농민, 홍군 사병 및 수고한 모든 민중과 그들의 가족은 남녀와 민족, 종교와 신앙을 불문하고 소비에트 법률 앞에서 평등하다. <헌법 대강>은 또한 제국주의가 중국의 정치, 경제에서 누린 일체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불평등 조약을 폐기하며, 중국에 있는 제국주의의 재산을 모두 국유화한다고 규정했다. 소비에트 정권의 최고 권력기관은 전국 노농병 대표대회로 대회 폐회 기간에는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가 최고 국가기관이며 중앙집행위원회 아래 인민위원회를 구성해 일상적인 정무를 처리하고 모든 법령과 결의안을 발표한다. 회의는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 중앙정부를 수립하고 장소는 장시성 루이진(瑞金)으로 결정했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 중앙정부는 각 근거지에 대해 중앙 지휘를 강화하는 역할을 일정 부분 했고,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혁명 군중의 투지 진작과 혁명 투쟁 추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또한 중국공산당 부분 집권의 중요한 시도로 정권, 군사, 경제, 문화 건설에서 매우 귀중한 역사적 경험을 축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