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4 | Publicado por:중국망

대혁명 실패 이후 중국공산당은 중국 혁명을 독립적으로 이끌게 되었다. 중국 사회의 성격과 혁명 성격, 대상, 동력, 전망 등 혁명의 성패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대표대회를 소집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1928년 6월 18일-7월 11일,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가 모스크바에서 비밀리에 개최됐다. 대회에 참석한 대표는 총 142명으로 표결권이 있는 정식 대표는 84명이었다. 취추바이가 제5기 중앙위원회를 대표해 <중국 혁명과 공산당>이라는 정치 보고를, 저우언라이가 조직 보고와 군사 보고를, 리리싼이 농민 문제 보고를, 샹중파(向忠發)가 노동자 운동 보고를 했고, 코민테른 대표 부하린이 <중국 혁명과 중국공산당의 임무>를 보고했다.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 군사, 조직, 소비에트 정권, 농민, 토지, 노동자, 선전, 민족, 여성, 청년단 등 문제에 관한 결의안를 통과시켰고, 수정된 <중국공산당 장정(中國共産黨章程)>을 심의 통과시켰다. 대회에서 선거를 통해 새로운 중앙위원회와 중앙심사위원회를 탄생시켰다. 이후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중앙정치국을 선출하고, 쑤자오정(蘇兆征)·샹중파·샹잉(項英)·저우언라이·차이허썬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리리싼·양인(楊殷)·쉬시건(徐錫根)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후보 위원으로 선출했으며, 샹중파를 중앙정치국 주석 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주석, 저우언라이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비서장으로 선출했다.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와 조건하에서 소집된 중대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회의였다. 대회에서 대혁명 실패 이후의 경험과 교훈을 진지하게 되새겼고 중국 혁명에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았다. 또한 당시 중국공산당을 괴롭히던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있었다. 첫째, 중국 사회의 성격과 혁명의 성격 문제에 대해 현 단계의 중국은 여전히 반(半)식민지 반(半)봉건사회 국가이고, 중국 혁명을 일으킨 기본적인 모순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현 단계의 중국 혁명은 부르주아계급 성격의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지적하였다. 둘째, 혁명적 태세와 당의 임무 문제에 대해 혁명은 침체기에 들어섰으며, 당의 전체 노선은 군중을 얻는 것이고, 당의 중심 업무는 백방으로 폭동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군중 작업이란 어려운 일을 하고,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명시했 다. 역사 발전의 제한성 때문에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 대회에서 중국 혁명의 특징, 핵심 문제, 혁명의 적, 중국공산 당의 업무 중심 등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지만 당의 결의가 전달 실행된 이후 당 전체의 사상이 기본적으로 통일고 혁명운동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