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노동자운동 제1차 고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4 | Publicado por:중국망

중국공산당 창당 이후 중국노동조합 서기부를 설치하고 역량을 집중해 노동자운동을 진행했다. 중국공산당의 영도로 중국 노동자계급이 빠르게 자각하여, 노동자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갔으며, 1922년 1월 홍콩 선원 파업을 기점으로 중국 노동자운동이 제1차 고조를 일으켰다. 파업은 홍콩 선원이 선주 측에 급여 인상과 취업 증대 등 합리적인 요구를 거절당하면서 시작됐고, 10만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참여했다. 56일 간의 꾸준한 투쟁 끝에 홍콩 선원 총파업은 승리를 거뒀다.


1922년 1월에서 1923년 2월까지 전국에서 크고 작은 파업이 100여 차례 일어났고 참여 노동자 수가 30만 이상에 달했다. 1923년 2월 4일 발생한 징한철도(京漢鐵路, 베이징-한커우漢口) 노동자 대파업으로 중국 노동자운동이 처음으로 최고조에 달하였다. 파업으로 제국주의와 반동 군벌은 공포에 떨게 됐다. 2월 7일, 군벌 우페이푸(吳佩孚)가 군경을 동원해 징한철도 전 구간의 파업 노동자를 유혈 진압해 국내외를 놀라게 한 2·7참사가 발생했다. 징한철도 총공회(總工會, 노동조합) 장안(江岸)분회 위원장이자 공산당 당원인 린샹첸(林祥謙)과 후베이(湖北)성 공단연합회 법률 고문이자 공산당 당원인 스양(施洋) 등이 살해당했다.


징한철도 노동자 대파업은 노동자의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일어난 것으로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운다'는 정치 구호를 분명하게 내세웠고, 중국 노동자계층의 힘을 보여주었으며, 전국 인민 사이에서 중국공산당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파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노동자의 목숨과 선혈은 중국 인민을 일깨워 제국주의와 봉건 군벌은 중국 인민의 적으로 끝까지 투쟁해야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