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탄생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Fecha de publicación:2022-07-14 | Publicado por:중국망

중국공산당은 20세기 20년대에 탄생한 근대 중국 사회 및 중국 인민 혁명 투쟁의 필연적 결과이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중국 노동자운동이 결합된 산물이다.


1920년 초, 중국공산당 창립자인 리다자오(李大钊)와 천두슈(陳獨秀)는 각각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서 활동하면서 중국공산당 창당을 준비했다. 3월, 리다자오는 베이징대학교 마르크스학설연구회를 설립했다. 이는 중국에서 최초로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고 연구하는 단체였다. 5월, 천두슈는 상하이에서 마르크스주의연구회를 조직했다. 이를 기반으로 같은 해 6월, 천두슈 등은 공산당 조직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천두슈는 리다자오에게 당명에 관한 의견을 구했고, 리다자오는 '공산당'이라고 명명할 것을 주장했으며, 천두슈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조건 마련과 준비 작업을 거쳐 1920년 8월, 상하이 공산당 초기 조직이 공식 설립됐고 '중국공산당'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중국의 첫 공산당 조직이다. 베이징의 공산당 초기 조직은 1920년 10월 공식 설립됐고 당시 이름을 '공산당 소조(共産黨小組)'라고 명명했다. 이후 우한(武漢), 창사 (長沙), 지난(濟南), 광저우(廣州) 등 지역에서 공산당 조이 속속 설립됐다. 유럽과 일본의 중국 유학생과 교민 중 진보인사들도 공산당 조직을 설립했다. 각지에 설립된 공산당 초기 조직은 마르크스주의의 전파와 중국 노동자운동과의 결합을 강력하게 촉진했고 중국공산당 창당의 여건을 마련 해주었다.


1921년 7월 23일,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상하이에서 개최됐다. 외부의 방해로 마지막 날 회의는 저장 (浙江)성 자싱(嘉興)시 난(南)호의 유람선에서 개최됐다. 대회에 참석한 중국 각지 및 일본의 초기 당 조직 대표로는 리다(李達), 리한쥔(李漢俊), 둥비우(董必武), 천탄추(陳潭秋), 마오쩌둥(毛澤東), 허수헝(何叔衡), 왕진메이(王盡美), 덩언밍(鄧恩銘), 장궈타오(張國燾), 류런징(劉仁靜), 천궁보(陳公博), 저우푸하이(周佛海)와 천두슈가 추천한 바오후이썽(包惠僧)이 있다. 이들은 전국 50여 명의 당원을 대표했다. 코민테른 대표로 마링(Maring)과 니콜스키(Nikolsky)가 참석했다. 대회에서는 <중국공산당 강령(中國共産黨綱領)>을 토론하고 통과시켰고 당명을 '중국공산당'으로 확정했다. 당 강령은 다음과 같다. '혁명군대는 반드시 프롤레타리아계급과 함께 부르주아계급의 정권을 전복시킨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를 계급투쟁이 끝날 때까지, 즉 사회 계급 구분이 소멸될 때까지 인정한다. 자본가 사유제를 폐지하고 기계, 토지, 공장, 반제품 등 생산 수단을 몰수해 사회 공유제로 전환한다. 코민테른을 연합한다'였다. 당 강령은 노동자, 농민, 사병을 조직하고 당의 근본 정치 목표가 사회 혁명임을 명시했다. 당 강령은 또한 당장(黨章) 성격에 속하는 조문을 포함하고 민주집중제의 조직 원칙과 당의 기율을 규정했다. 대회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중국공산당 창당 이후 중심 임무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영도임을 확정했으며, 노동자운동 조직과 선전 등 작업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대회는 선거를 통해 중국공산당 중앙 임시 영도기구인 중앙국을 설치하고 천두슈를 서기로, 장궈타오를 조직 책임자로, 리다를 선전 책임자로 선출했다.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의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진부하고 낙후된 중국에 새롭고,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행동지침으로 삼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실현을 투쟁 목표로 하는, 통일되고 유일한 프롤레타리아계급 정당이 출현했다. 이는 근대 이후 중국 사회 진보와 혁명 발전의 객관적인 요구이자 중국 역사상 천지가 개벽할 만한 커다란 사건이었다. 중국공산당의 창당으로 중국의 혁명 면모가 새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