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 성[山東省] 중부에 있는 공업도시이며 시.
장뎬[張店]이라고도 한다. 준성급(準省級) 자치시이다. 현재의 중심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 쯔청[淄城:쯔촨(淄川)]과 보산[博山] 두 현(縣)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이 두 현은 산둥 성에서도 탄전과 광산이 가장 많은 곳이다. 쯔청은 유서 깊은 도시이며 행정중심지이다. BC 2세기 이곳에 반양현(般陽縣)이 들어섰으나 3세기에 폐지되었다. 이어 6세기에 패구현(貝邱縣)이 되면서 현의 지위를 되찾았다. 596년 치주(淄州)의 주청소재지가 되었으며, 598년 쯔촨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오랫동안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쯔청은 줄곧 중요한 행정중심지였다. 또한 타이산 산맥[泰山山脈] 북쪽 기슭, 산맥의 자락을 따라 나 있는 도로상에 있으며, 보산으로 가는 계곡 입구에 있어 여러 노선이 집중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산은 쯔청보다 늦게 발전했는데, 본래는 1558년에 성벽을 쌓기 시작한 보산 진 자체와 안신진(顔神鎭)의 두 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자기와 유리공업의 주요중심지인 보산은 16세기에 이미 자체 내에 세관이 있을 만큼 부유했다. 그뒤 크게 성장해 1734년 현으로 독립했다. 1904년 칭다오[靑島]에서 지난[濟南]으로 가는 철도가 완공되면서 이곳은 주요공업단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철도는 중요한 시장도시인 장뎬(지금의 쯔보 시 시청소재지)과 저우춘[周村]을 거쳐 쯔청의 북쪽을 지난다. 장뎬과 보산을 잇는 지선 철도는 독일인에 의해 가설되었다. 그러나 이 노선은 독일인이 철도 연변의 탄광채굴권을 얻어 쯔청 주변지역에서 석탄채굴을 시작한 이후에야 놓여졌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는 일본이 철도와 광산을 관리했다. 1921년 이 광산은 중일 합작회사인 루다[魯大]광산회사가 관리하게 되었으며, 보산 광산도 얼마 후인 1924년에 개발되어 역시 중일 합작회사인 보둥사[博東社]가 관리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보산은 석탄 생산량에 있어서 쯔청을 능가했다. 연간 100만t을 생산해 60만t을 기록한 쯔청을 앞질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제철소도 들어섰다. 1919년 일본은 장뎬에서 동쪽으로 수㎞ 떨어진 간선철도 연변에 쯔청에서 공급하는 철광석과 코크스를 사용하는 진링전[金嶺鎭] 제철소를 세웠다.
1949년 이후 전지역이 하나의 시로 합쳐지면서 주요공업기지로 개발되었다. 보산이 시청소재지였던 1950, 1960년대에 걸쳐 행정상의 이름은 쯔보였다. 뒤이어 시청소재지가 장뎬으로 옮겨가자 그곳이 쯔보로 불렸다. 그리고 보산은 옛 이름을 되찾았다. 1963년 쯔보(보산)는 산둥 최대의 공업도시가 되어 칭다오를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1953~58년에 인구는 25만 9,000명에서 87만 5,000명으로 증가했다. 이 도시는 크게 팽창했으나 성장은 보산과 쯔보(옛날의 장뎬)에 집중되었다. 1970년대에는 둘 다 쯔청보다 눈에 띄게 커졌다. 당시의 시 전체인구는 120만 명에 달했다. 쯔보의 주요산업은 광업과 중공업, 기계제작, 전기 설비와 배터리 제조였다. 전통도자기·유리·내화벽돌·내화성재료 및 공업도자기도 제조하고 있다. 중요한 화학공장도 있다. 중공업은 쯔청과 보산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쯔보와 저우춘은 직물제조와 식품가공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교통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커졌다. 면적 2,935㎢, 인구 2,234,000(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