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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국정이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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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china.org.cn | 时间: 2014-12-04 12:53:32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

 

 내가 1975 중국에 방문한 중국의 내정과 외교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나는 수십년 동안 중국을 수차례 방문해 오면서 중국의 오천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명을 경탄해 마지 않았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저서 역시 중국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2012 5 베이징에서 당시 부주석이였던 시진핑을 알게 되었고 그뒤로 반년이 지난 2012 11, 시진핑은 중공중앙 총서기에 당선되었다. 그가 취임한 2 동안 나는 지난 40년간 중국 고위층 정치인의 이익 관심사와 시각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내정과 외교의 전통을 견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국을 고대이집트와 같은 고대문명국과 비교했을 중화문명은 오천년을 이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유교사상으로 대표되는 중국 전통문명은 적어도 천여년 동안 통치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는 중국에 전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특정 종교, 국교가 없음을 의미한다. 불교, 도교, 힌두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중국에서 조화롭게 영향력을 발휘했고 왕족간에 권력분쟁에서도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몽고족과 만주족이 중원을 차지했지만 이러한 국면을 바꿔 놓치는 못했고 그들은 오히려 한족의 전통에 순응했고 이에 따라 통치했다.

 

15세기 중국은 우월한 문명을 보유했고 조선, 인쇄, 군사등 방면에서 선진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다. 시기에 유럽은 산업화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고 북미 역시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19세기, 유럽열강은 중국을 완전히 강점하지는 못했지만 조계지,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은 과정에서 서로 앞을 다투었고, 독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중국은 일시적 좌절을 겪으면서 빈곤에 허덕이게 되었다. 20세기 일본의 대규모침략은 중국을 더욱 설상가상으로 몰아갔고 쑨중산(孫中山) 위정자들의 수년에 걸친 노력으로 외국의 강압에서 벗어날 있었다. 1949 중국은 마오저둥(毛澤東) 지도하에 승리를 거두었고 이로써 국가재건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마오저둥은 당시 중국의 의심할 여지없는 최고지도자였고 작금의 중국은 마오저둥이 닦은 반석 위에 새워졌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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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来源: 中国网
关键词:[ 시진핑의 국정이념 习近平 治国理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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