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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팡밍(韓方明), 신시대 중국 공공외교의 선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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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china.org.cn | 时间: 2018-12-10 10:09:05

2013년 12월 18일, 한팡밍은 한국 동국대학교의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진설명) 학위수여식에서 김희옥 동국대학교 총장이 한팡밍에게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 증서를 수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차하얼학회 제공


중국 신형 싱크탱크의 길을 열다 


개혁개방 이후 외국과의 민간교류가 등장했지만 2009년 전까지 공공외교는 주로 개인간 왕래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 규모나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러다 중국이 점차 세계에 융화되고 소프트파워 확립이 아젠다로 부상함에 따라 공공외교 또한 중국 정부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09년, 중국은 ‘공공외교를 전체 외교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보는 것은 달라진 정세에 따라 중국의 외교적 배치를 완비하는 객관적 요구이자 중국 외교 업무의 중요한 개척방향’이라고 제시했다. 이때부터 공공외교는 발전의 전기를 맞았고, 조직화 및 능력 제고 단계에 진입했다. 그리고 한팡밍은 이러한 흐름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한팡밍이 전국정협 외사위원회 부주임을 맡기 시작한 2008년, 잡지를 창간한 것은 그의 일생의 사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정협 외사위원회는 <공공외교 계간(季刊)>을 창간해야 했는데 모두들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내가 계간지 창간 업무를 맡아서 고향의 차하얼 목장에 차하얼학회를 만들었다. 학회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바로 이 간행물 발간을 주관하기 위해서였다.”  

 

잡지 창간 과정에서 한팡밍은 학회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여러 회의를 개최해야 하며, 이러한 성과는 단순히 간행물 발간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이에 차하얼학회는 연구영역을 확장하고 연구방향을 충실히 하면서 점차 외교와 국제관계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회 씽크탱크가 되었다.  

 

마침 당시는 중국에 씽크탱크 설립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4월 처음으로 ‘중국특색의 신형 씽크탱크’ 건설이라는 목표를 제시했고, 동시에 씽크탱크 발전을 국가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하면서 씽크탱크 건설을 국가 전략적 위치로 격상시켰다. 2013년 11월, 중국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중국 특색 신형 씽크탱크 건설과 정책자문제도 건립 및 완비가 제시되었고, 중국특색 신형 씽크탱크 건설을 국가 거버넌스 체계 및 경영능력 현대화의 일부분으로 간주했다. 한팡밍은 이때부터 중국특색 신형 씽크탱크를 차하얼학회의 발전 방향으로 설정했다.  

 

2014년 초, 차하얼학회는 공공외교사업을 추진하면서 기존에 쌓은 경험을 토대로 ‘평화학’이라는 연구영역을 개척했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차하얼학회는 평화를 주제로 여러 차례의 학술행사를 조직했고, ‘반도평화연구센터’와 ‘충돌 및 화해연구센터’ 등 두 개의 전문 연구기관도 설립했다. 2017년에는 ‘일대일로 연구센터’, ‘히말라야 구역 연구센터’ ‘에너지외교 연구센터’를 세웠고, 아프리카 모리셔스에 최초의 해외본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동시에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외자유치’와 ‘해외진출’이 결합한 길을 걸어왔던 것처럼, 차하얼학회는 신형 씽크탱크를 건설함에 있어 서방의 유수 씽크탱크의 독립적 이념·조직 구조·제도 설계·자금 운영 메커니즘·직원 연수 및 능력 제고 방법 등을 참고했다.  

 

차하얼학회를 묘사함에 있어 ‘와호장룡(臥虎藏龍)’이라는 표현만큼 적절한 것이 있을까. 차하얼학회가 주관하고 있는 <공공외교 계간> 총편집장은 자오치정(趙啟正) 전(前)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임이자 제11기 전국정협 외사위원회 주임이 맡고 있다. 차하얼학회 전문가단 가운데 국제 자문위원회 회원으로는 은퇴한 대사(大使)급 외교관과 해외의 전 정계 요인(무르탈라 모하메드 전 나이지리아 대통령, 임창열 전 한국 부총리 등), 세계 저명 학자(‘평화학의 대부’로 불리는 요한 갈퉁 교수 등)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또 수석연구원 및 연구원단에는 중국의 많은 외교 및 국제관계 분야 우수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중국 씽크탱크는 정부·반관반민·민간이라는 ‘삼위일체’를 형성하면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새로운 단계에 올라 있다. 각각의 씽크탱크들은 세부 영역에서 서로 다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8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이 발표한<2017 글로벌 씽크탱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는 현재 512개의 씽크탱크가 있어 씽크탱크 수 기준 전세계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글로벌 우수 정책연구 씽크탱크’, ‘글로벌 최고 외교정책 및 국제사무 씽크탱크’,‘글로벌 최고 국내 경제정책 씽크탱크’, ‘글로벌 최고 국제 경제 씽크탱크’, ‘글로벌 최고 환경정책 씽크탱크’ 등 다양한 베스트 리스트마다 중국 씽크탱크들이 포진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차하얼학회는 중국 사회 씽크탱크의 ‘리더’로서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국가정보센터의 ‘일대일로 빅데이터 센터’가 2017년 발표한 <일대일로 빅데이터 보고서(2017)>에서 차하얼학회는 ‘일대일로’ 사회 씽크탱크 영향력 순위 3위에 이름을 올렸고,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 씽크탱크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펜실베니아대학의<2017 글로벌 씽크탱크 보고서>에선 ‘글로벌 최고 외교정책 및 국제사무 씽크탱크’ 분야 중국 순위 5위를 차지했다.  

 

한핑밍은 “40년의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중국은 지금처럼 국제사회와 연계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은 현재 공식 씽크탱크, 대학 씽크탱크뿐만 아니라 차하얼학회 같은 사회 씽크탱크도 보유하고 있다. 대중과 미디어에 대한 사회 씽크탱크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정책 제안 부분에 있어서도 점차 전통적 제한을 돌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반도 안정을 위한 노력들 

 

차하얼학회는 2014년 반도평화연구센터를 설립했지만 이후 불거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태는 조선반도(한반도) 문제 중 차하얼학회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2016년 7월 한국 국방부가 사드 배치를 선언하면서 중한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사드체계의 핵심 장비인 X 밴드 레이더가 중국 전역을 탐지할 수 있어 중국의 국가안보이익을 엄중하게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양국의 공식교류와 민간교류는 곧 정체 상태에 빠졌다. 이 같은 배경 하에 한팡밍은 차하얼학회의 연구 및 활동 중점을 조선반도에 두기로 결정했다. “사회 씽크탱크의 목표는 대중에 봉사하고 정책 결정층에 봉사하고 국가의 외교대국(大局)에 봉사하는 것이다. 중점이 있고 이슈가 있는 곳에 우리 업무의 중점을 두어야 한다.” 한팡밍의 말이다. 

 

양국 간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교류활동을 추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팡밍은 “당시 중한 양국 간 인적·경제 교류 모두 줄어들었고, 공식적 소통 또한 상당히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한팡밍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민간 씽크탱크로서 우리만의 유연성이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출발해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된다면, 법으로 금지한 일이 아니라면 바로 시도해 보았다.” 

 

2016년 8월, 한팡밍은 학회 대표단을 인솔해 조선(북한)을 방문, 중·조 공공외교 여정을 시작했다. 중조 최초의 민간 씽크탱크 교류 채널이 이때 구축되었는데, 바로 ‘차하얼 채널’이다. 같은 시기, 차하얼학회의 노력으로 중국 TCL그룹과 한국 CJ대한통운이 물류 합작법인 ‘CJ 스피덱스’를 설립했다. CJ 스피덱스는 이듬해 15억 위안의 매출액을 기록해 그 해 중한 양국 경제협력의 대표적 성공사례가 되었다.  

 

지난해 차하얼학회는 조선반도 문제에 있어 더욱 민첩한 행보를 보였다. 2017년 한해 동안 개최한 53개 행사 중 40여 개가 조선반도 문제와 관련된 행사였을 정도였다. 차하얼학회 임원진과 연구원들은 쉴 새 없이 중한 양국을 오가며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인사들과 접촉했다. 또한, 비공식 회의, 씽크탱크 교류, 혹은 우회적 방식을 통해 양국 지방 간 교류를 추진함으로써 양국 관계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었다. 한팡밍은 “2017년 나는 한국의 ‘단골 손님’이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한국에 가 각종 행사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한팡밍과 차하얼학회의 노력은 한국 정부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7년 12월 인천시가 한팡밍에게 ‘명예시민’ 자격증을 수여한 데 이어 올해 2월 27일에는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가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대신해 ‘대한민국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여함으로써 장기간 조선반도 평화 및 중한 우호 교류 증진을 위한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중국인이 이 같은 영예를 얻은 것은 약 12년 만의 일이었다.   

 

조선반도 정세가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2018년, 한팡밍은 또 한번 새로운 관심 포인트를 찾았다. 얼마 전인 4월 22-30일 대표단을 이끌고 일본으로 향한 한팡밍은 현지 정계·재계·학계·종교계·씽크탱크·화교(華僑) 인사들과 함께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교류의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인류 운명공동체’ 등 중국의 외교 이념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한팡밍은 “중일 관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역시 쌍방의 민심교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선반도 상황이 점차 호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중점을 일본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한팡밍에게는 한 가지 ‘작은 목표’가 있다. 바로 차하얼학회를 ‘중국의 브루킹스연구소’로 키우는 것이다. 한팡밍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로버트 브루킹스는 브루킹스연구소를 세웠다. 그가 별세한지 86년이 지났지만 브루킹스연구소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씽크탱크로 손꼽힌다. 내가 죽고 300년이 지난 뒤에도 차하얼학회가 여전히 건재해 있는 것이 나의 목표다.” 

 

글|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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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来源:人民画报
关键词:[한팡밍 공공외교 선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