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슈(黄文秀)의 아버지 황중제(왼쪽)와 언니 황아이쥐안(가운데)이 ‘시대의 모범’ 발표식에 참석했다.
7월1일 중국선전부는 황원슈의 선진 업적을 사회에 공개하며 그녀에게 ‘시대의 모범’ 칭호를 부여했다.
황원슈는 광시(廣西) 바이써러예(百色樂業)현 신화(新化)진 바이니(百坭)촌의 제1서기로 베이징사범대학 석사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촌 간부 일을 시작했다. 6월 16일 밤, 황원슈는 주말을 이용해 병세가 위중한 아버지를 뵈러 고향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산사태를 만나 숨졌고 그녀의 생명은 30세에서 영원히 멈춰섰다.
광시바이써 지역은 전국 빈곤퇴치 주요 전장 중 하나이다.
젊은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선택은 몇 가지인가? ‘깊은 산을 나온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 일한다.’ 이것이 황원슈의 대답이다. 그녀는 “낙후된 고향을 마주한다면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생전에 남긴 동영상에서 기층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주촌 제1서기에 대한 국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으며 실질적 행동으로 공산당 사명의 결심을 실천해야 한다고 늘 강조해 왔다.
황원슈의 아버지는 “딸은 원래 돈벌이가 더 나은 직업을 택할 수 있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딸에게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네가 기왕 입당했으니 공산당원인 것이고 고향으로 돌아와 청렴한 인민의 공복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황원슈가 주촌 제1서기로 일한 지 1년여 만에 마을의 주요 농산품인 당도 높은 사탕귤 재배면적은 2배 넘게 증가했다. 원래 1천무(亩,약 666km2)가 채 안되던 것이 2천무로 늘어났고 마을 88가구 418명이 안정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마을 전체 빈곤발생율도 2.71%로 감소했다. 또한 마을 집체경제소득은 6만3800위안에 달해 2018년도 ‘향풍문명’홍기촌에 선정되었다.
황원슈는 숨졌지만 그녀와 함께 했던 빈곤퇴치사업 간부들은 여전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한 사람의 이상이자 한 집단의 이상이다. 또한 짧은 생명의 기억이자 한 시대의 기억이다. 공산당원은 군중을 비바람으로부터 막아주는 우산이 되고 군중의 우려를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소가 되어야 한다. 공산당원, 인민의 공복이라는 초심은 단한번도 퇴색한 적이 없고 젊은 간부의 안타까운 희생은 늘 유감스럽지만 결코 후회 없으며 이들의 초심은 이야기 속에서 닦을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연마할수록 더욱 진정성을 띠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