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후퉈강 상류의 가장 큰 지류인 위(峪)강의 강물이 늘어나면서 주변 농촌의 관광업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많은 관광객들이 강을 따라 산시성 다이현 위커우진 돤자완촌을 찾았다.
한때 가난의 대명사였던 이 마을은 오늘날 주변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신했다. 마을 변화에 대해서 말하면 이곳 주민들은 항상 '류구이전'이라는 사람의 공을 칭찬한다.
올해 59세인 류구이전은 마을 의사로 44년, 초등학교 교사로 29년, 마을 당지부 서기로 25년, 마을위원회 주임으로 18년을 살았다.
1978년, 당시 이곳 마을에는 의사가 없었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은 종종 작은 병을 크게 키우기 일쑤였다. 당시 현 차원에서 의사를 교육시키는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마을 유일한 고등학생이었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둔 류 씨는 당지부 서기였던 부친의 말을 들어 마을 의사가 되기로 했다. 이후 44년 동안 마을 의사로 봉사했다.
스스로 공부하기도 하고, 다른 의사에게 배우기도 하면서 그는 주사, 수액, 침술, 물리치료 등을 익혔으며 마을 주민들은 그를 가장 신뢰하고 '전능'하기까지한 의사로 대했다. 비가 오든 한밤중이든 그는 마을 사람들이 필요하다면 두말없이 달려갔다.
류구이전이 마을 보건소에서 한 마을 주민의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1988년, 한 사람밖에 없던 돤자완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면서 아이들은 더이상 배울 수 없게 됐다. 부친의 권유를 받은 류 씨는 대리 선생님을 역임했고, 2017년 하반기까지 29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류구이전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오랜 기간 마을을 위해 헌신한 류 씨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어 1996년, 마을 당지부 서기를 맡게 됐고, 2003년에는 마을위원회 주임을 겸임했다.
또한 류 씨는 주민들의 빈곤 탈출을 돕기 위해 '잣나무 묘목 키우기' 사업을 발족해 2년 후, 성과를 내는데 성공했다.
'묘목 키우기' 사업이 빛을 발하면서 이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늘어났고, 이후 협동조합이 설립됐으며, '류구이전'으로 상표 등록 된 묘목 기지까지 건설됐다. 2017년 말, 돤자완촌 전체 빈곤 가구가 빈곤 탈출에 성공했고, 현재 빈곤 탈출 가구의 연간 1인당 실수입은 1만 위안을 초과했다.
한편, 향촌 진흥의 '선두 기러기' 역할을 맡아온 류 씨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 그는 20차 당대회 대표로 선출됐다.
현재 류 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촌 생태 관광 발전에 주력하고 있고, 유관 기업과 협력해 야외 취사, 캠핑, 레프팅 등 관광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는 등 주민들의 나은 삶을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