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 양국은 전 세계에서 지금도 음력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중국에서 춘제는 '명절 중의 으뜸'으로 불리며 가장 신성하고, 가장 성대하며, 가장 떠들썩한 명절이다. 한국에서 설은 3대 전통 명절 중 중요한 명절이다. 춘제는 농경 문명이 발전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힘을 제공했고, 현대사회로 진입한 뒤에는 사람들이 춘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한 양국에는 또한 '세시 풍속'이 있다.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매우 밀접한 역사적 연원과 시기별, 민족별, 지역별 다양성을 보여주며 각양각색의 설 문화를 연출한다.
가장 성대한 전통 명절
중국에서 '춘제'라고 하면 보통 음력 새해를 말한다. 즉 정월 초하루다. 춘제는 넓은 의미에서 정월 초하루만 지칭하지 않는다. 북방에서는 음력 12월 23일을, 남방에서는 음력 12월 24일을 '샤오녠(小年)'이라고 하고 이날부터 설 맞이를 시작한다. 더 일찍 춘제를 시작하는 지역도 있어 '음력 12월 8일이 지나면 새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샤오녠'부터 춘제는 앞뒤로 한 달이 넘기도 해 춘제는 중국에서 가장 성대하고 긴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춘제 때는 날마다 다른 세시 풍속과 의식, 금기가 있고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전통 풍속을 이어나가면서 새 시대의 춘제를 맞이하길 바란다. 예를 들어 '샤오녠'에는 조왕신(灶王神, 부엌신)을 모시고, 짜오탕(灶糖)을 먹으며, 섣달 그믐에는 온 가족이 녠예판(年夜飯)을 먹고, 난로를 둘러싸고 모이는 웨이루(圍爐)를 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서로 새해 인사를 한다. 정월 초하루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세배를 하며, 정월 초이레에는 런르제(人日節)를 쇠고, 정월 대보름에는 꽃등을 본다. '룽타이터우(龍擡頭)'라고 부르는 음력 2월 2일 춘겅제(春耕節)에 이발을 하면 상서롭다고 믿는다. 이렇게 해야 춘제를 제대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서울 종로1가에 있는 보신각 종은 양력 새해인 '신정'이 되면 울린다. 때문에 12월 31일 밤이면 보신각 타종 행사를 보며 새해를 맞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종각으로 모인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양력 새해인 '신정'과 음력 새해인 '구정'을 다 쇠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중국이 음력 새해를 더 중요시하는 전통을 이어온 것과 달리 한국의 '신정'과 '구정'의 위치 변화에는 역사적 요인이 깊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시기에 일본은 문화 동화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해 한국이 일본 방식에 따라 양력 '설'을 쇠도록 강제했다. 이 때문에 '이중 설'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한국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어도 양력 설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면서 세계와 발맞추고 설을 두 번 쇰으로써 발생하는 낭비를 줄이기 위해 한국은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양력 설 전통을 계속 이어갔다. 1985년 '구정'을 정식으로 민속 명절에 편입시키고 나서야 음력 설은 법정 휴일이 됐다. 몇 년 뒤인 1989년 음력 설이 마침내 본래 이름인 '설날'을 되찾았다.
춘제의 대표적인 미식
중국 춘제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 미식은 자오쯔(餃子, 교자)다. 그러나 자오쯔 외에도 조리법, 먹는 법, 형태가 다양한 특별한 미식들이 춘제 기간에 등장한다. 샤오녠에는 맥아당으로 만든 짜오탕을 만들어 먹으며 조왕신이 짜오탕을 먹고 하늘에 돌아가 좋은 말을 해달라고 기원한다. 남방의 일부 지방에서는 쭝쯔(粽子)를 먹는다. 녠예판으로 자오쯔를 먹는다. 정월 초하루에는 쌀이나 찹쌀로 만든 녠가오(年糕, 떡)를 먹는다. '작년보다 올해 더 높아지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녠가오로 과거 중국의 화폐였던 원보(元寶)나 여의(如意) 등의 형태를 만들어 복을 바라기도 했다. 정월 초이레 런르제에는 면을 먹는다. 정월 보름에는 위안샤오(元宵, 소가 있는 새알심 모양의 식품)나 탕위안(湯圓)을 먹는다. 음력 2월 2일에는 춘빙(春餅, 볶은 고기나 채소, 계란 등을 밀전병에 싸 먹는 것)과 돼지 머리 고기를 먹는다.
한국인은 설에 '세찬'을 준비해 제사와 친척과 손님 대접에 쓴다. 세찬을 구성하는 미식은 다양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가래떡과 시루떡이다. 한국인은 설날 반드시 떡국을 먹는다. 한국에는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의 춘제에는 자오쯔와 바이자판(百家飯)을 먹는 풍습이 있다. 과거 한국에는 정월 대보름을 보낼 때 아이에게 옆집에 가서 각종 잡곡을 얻어오라고 한 다음 그것으로 밥을 지었다. 아이가 여러 이웃들의 밥, 즉 바이자판을 먹고 건강하라는 뜻에서다. 지금은 보기 드문 풍경이지만 정월 대보름에 오곡밥을 먹는 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이자판 외에 중국 남방의 옛 거리에는 정월 대보름에 100m 정도 되는 긴 탁자를 내놓고 각 가정에서 자기가 만든 음식을 내와 '바이자옌(百家宴)'을 만든다. 바이자옌은 독특하고 오래된 전통 민속 문화로 가족과 친척, 이웃의 건강과 평안, 화목을 기원한다.
다양한 춘제 풍습
중국에는 매우 유명한 <원일(元日, 정월>이라는 고시가 있다. '폭중성중일세제, 춘풍송난입도소. 천문만호동동일, 총파신도환구부.(爆竹聲中一歲除, 春風送暖入屠蘇. 千門萬戶曈曈日, 總把新桃換舊符.)' 이 시에는 폭죽과 음주, 도부(桃符) 걸기 같은 중국 고대 백성들의 춘제 풍경과 떠들썩한 분위기가 생동감 있게 묘사됐다. 이런 풍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지역별, 민족별 춘제를 쇠는 풍속은 다양하지만 중한 양국은 제사, 까치 설날 쇠기, 춘련(春聯) 붙이기, 새 옷 입기, 세뱃돈 등 같거나 비슷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 모두에서 제사는 춘제 때 중요한 행사다. 중한 양국은 전통문화가 일맥상통해 예부터 효도를 강조해서 전통 명절에도 조상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 년 중 가장 성대한 명절인 춘제에 조상을 생각하면서 조상에게 자손을 보우해달라고 빈다. 그러나 제사의 시간과 형식은 지역과 민족에 따라 다르다.
세시 풍속에서 또 다른 중요한 풍습은 섣달 그믐에 잠을 안 자고 밤을 새우면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인은 섣달 그믐에 보통 집안의 등을 모두 켜 놓고 밤새 끄지 않는다. 가족과 마작을 하거나 자오쯔를 먹거나 춘제롄환완후이(春節聯歡晚會, 설 특집 방송)를 보면서 밤을 샌다. 한국도 섣달 그믐에 밤을 새는 풍습이 있다. 한국에서는 섣달 그믐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설이 있다. 이 외에도 중국 남방에서는 유신(遊神)과 사자 춤이 있고 한국에서는 윷놀이, 널뛰기 등이 있다. 이들 모두 중한 양국의 대표적이고 재미 있으며 매력 있는 세시 풍속이다.
중한 양국은 매우 비슷한 세시 풍속이 있지만 춘제의 '색깔'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중국인은 붉은색을 좋아한다. 붉은색은 중국에서 상서로움과 경사를 상징하기 때문에 혼례와 중요한 명절, 장소에 붉은색을 사용한다. 춘제는 일 년 중 가장 '성대한' 명절이기 때문에 홍등을 걸고 붉은 춘련을 붙이며 훙바오(紅包, 빨간 봉투에 넣어 주는 세뱃돈이나 축의금)를 준다. 상서로움을 위해 춘제 기간에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스카프를 두르며 붉은 양말을 신는 사람이 많다. 출생 년도의 띠에 해당하는 해라면 붉은 허리띠를 둘러 재앙을 예방한다. 마트 안 상품 포장도 붉은색으로 바뀌고 도시도 붉은색으로 단장해 도시 전체에 춘제 분위기가 충만해진다. 반면 한국인은 예부터 흰색을 숭상해 스스로를 '백의민족'이라고 칭했다. 흰색은 순결과 소박을 상징한다. 흰색에 대한 한국인의 이런 생각은 현대까지 이어져 한국 국기의 바탕색, 세뱃돈, 결혼식 축의금의 봉투, 한옥 문에 붙이는 춘련도 흰색이다. 이로써 흰색에 대한 한국인의 특별한 감정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한국에서 음양오행을 대표하는 흑, 백, 황, 청, 적의 '오방색'을 설이 되면 다양한 장식과 복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방색 복주머니를 포함해 아이가 입는 색동저고리는 귀신을 피하고 재난을 막아주며 아이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어른도 다양한 색깔의 전통 한복을 입고 이 성대한 명절을 축하한다.
중한 민간에서는 춘련을 붙이는 풍습이 있다. 춘련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예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풍습이자 특별한 문학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중국 북방에는 문신 붙이기, 촹화(窗花, 창문에 붙이는 종이공예) 붙이기, 조전(吊錢) 걸기 풍속이 있다. 춘제 때 문 머리와 창문을 따라 장방형의 옛 돈 형태인 '먼댜오쯔(門吊子)'를 붙여 춘련, 촹화와 호응을 이룬다. 요즘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지만 톈진(天津)처럼 이런 '과첸(挂錢, 돈을 거는 것)' 풍습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춘제 기간에 톈진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창문들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다. 한국의 거리를 걸으면 특히 한옥을 지나면 문 앞에 '입춘대길'이라고 쓴 입춘서를 볼 수 있다. 세심한 사람이라면 중국의 춘련은 붉은색으로 경사스러움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대련(對聯), 복(福)자, 문신(門神) 등으로 구성됐다는 것을 알 것이다. 반면 한국의 춘련은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보통 번체 한자인 '입춘대길'과 '건양다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등을 써 문 양 옆에 각각 붙여 간결하고 우아한 멋이 있다. 이 밖에 정월 초하루에는 벽에 복을 상징하는 복조리를 건다. 중한 양국의 '춘련'은 형식은 다르지만 봄이 오는 때 귀신과 재해를 막고 복과 행운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은 같다.
경제가 발전하고 역사가 변하면서 물질 생활은 풍부해졌지만, 춘제에 '춘제 분위기'가 점점 덜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 사이의 정상적인 교류도 영향을 받아 녠예판을 함께 즐기기도 어렵고, 점점 사라지는 세시 풍속도 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의 영향과 춘제 휴일의 제한으로 예전처럼 의식(儀式)적인 면으로나 감정적인 면으로나 온전한 춘제를 즐기기 어려워졌다. 또한 많은 '세시 풍속'이 바쁜 휴일 때문에 간단하게 변하고 심지어 잊혀지기도 했다. 현재 춘제는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고 새해에 대한 아름다운 축원의 뜻을 담은 명절이 됐지만 일부 세시 풍속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더해져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춘제 문화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 문화 유산이자 세계의 문화 유산으로 함께 이어가고 지켜 인류 물질 문명과 정신 문명의 보물창고에 찬란한 보배를 더해야 한다. 또한 미래의 후배들도 이런 전통문화의 매력과 재미를 즐기고, 선조의 대자연에 대한 경외를 함께 느끼며, 그들이 축적한 지혜와 자손들에게 행한 아름다운 기원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