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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칭다오는 난징[南京] 국민정부의 효과적인 통제하에 들어갔으며, 이어 특별시가 되었다. 항구로서 계속 발전한 칭다오는 1930년 무렵에는 교역량에서 경쟁 항구인 톈진[天津]을 압도했다. 그후에도 톈진을 누르고 계속 성장했다. 1938년 일본이 다시 칭다오를 점령하여 1945년까지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 괄목할 만한 산업 발전이 이루어졌다. 1941년까지 칭다오에는 근대식 면방직공장, 기관차·열차 제작소 및 수리공장, 기계수선소가 세워졌으며, 고무·성냥·화학약품·염료 등을 제조하는 공장도 들어섰다. 양조공장에서는 중국에서 매우 유명한 맥주가 생산된다. 1949년 이래 칭다오는 주요 중공업기지로 발전했다. 1970년대까지는 과거에 많이 제조되었던 직물이 기계공업과 함께 경쟁적으로 발달했다. 1950년대말 중국에서 으뜸 가는 주요철강공장이 이 지역에 세워졌다. 칭다오는 동서를 잇는 철도 노선의 종착역으로, 옌타이 항[煙臺港]과 철도로 이어져 있다. 큰 어항이기도 하며 중요한 농업 중심지이기도 한 칭다오에는 산둥대학교, 칭다오 기술연구소, 칭다오공과대학, 해양연구소 및 그밖의 고등교육기관이 있다. 인구 2,300,000(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