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이후 청동기문물등 국보가 연달아 출토되면서 적잖은 고고학자들은 류리허에 서주와 연나라 건설이 더 앞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빈번한 논쟁에 대해 베이징대학 저명 역사지리학자인 위에성양(岳升阳) 교수는 문헌상으로 볼 때, 지성의 연대가 좀더 앞서지만 현재 이를 뒷받침해 줄 강력한 문물이 출토되지 않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도시 고증업무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라며 “지금의 광안먼 일대는 일찌기 번화가로 변모했고 발굴작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