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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땅에서 개방의 땅으로…시짱을 가다

인민화보  |   송고시간:2024-09-29 10:2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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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화보 | 2024-09-29

자시룬부 사원에 기도하러 온 짱족 불교신자들 

저녁에 호텔에 돌아오니 르카쩌에 있는 중국인 친구들이 찾아왔다. 한명은 소수민족인 바이(白)족이고, 다른 한명은 한족이다. 이들은 저녁 겸 술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으나 나는 고산병 우려돼 찻집으로 가자고 했다. 은행원인 이들은 필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1시간 거리인 바이랑(白郞)현 지인의 과수원에서 직접 딸기와 토마토를 따왔다며 르카쩌 명물인 구기자차도 함께 건넸다. 자연이 청정 무공해라서 그런가 사람들도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찻집을 나와 시내를 걷는 데 한 쇼핑센터에 '파리바게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오지에서 한국 기업의 간판을 보니 반가웠다. 늦은 시간이라 가게가 문을 닫아 중국 친구들에게 빵을 사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시짱은 히말라야 설산에 둘러싸인 은둔의 땅이었다. 과거 중국의 전략은 토번이라 불리는 이민족이 기름진 땅 중원을 넘보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송첸캄포왕이 당나라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했을 때 이를 수락했던 것이다. 문성공주의 혼인은 평화와 문명의 사절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문성공주는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라싸에 이르는 먼 거리를 수많은 기술자와 물품을 가지고 이동했다. 낯선 땅에 얼굴도 모르는 이민족 남자를 찾아가는 문성공주는 함께 모시고 간 불상 앞에서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 불상은 지금 라싸에 있는 대조사(大昭寺, 조캉사원)에 모셔져 있다. 그래서 문성공주는 당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짱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신중국 건국 이후 시짱에서 농노제가 폐지되고 토지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시짱은 여전히 은둔의 땅이었다. 그런 은둔의 땅이 이제 개방의 땅이 되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칭짱(靑藏)철도의 개통 덕분이었다. 지난 2006년 개통된 칭짱철도는 칭하이(靑海) 시닝(西寧)과 라싸를 잇는 고속철도로 총길이가 1956km이다. 칭짱고원 불모지를 달리는 고속철도는 은둔과 고립의 땅인 시짱에 사람과 물자를 끌어들였다. 사람은 몰려들고 물가는 싸졌다. 필자가 19일 저녁에 라싸 시내 상점가에서 만난 상인은 간쑤(甘肅)성 출신의 회(回)족이다. 그는 칭짱철도 개통 이후 라싸로 이주해 장사를 하고 있다. 현재 쓰촨성 청두에서 라싸를 잇는 총연장 1629km의 촨짱(川藏)철도도 건설 중이다. 이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라싸는 고속철도로 동남아 국가들과도 연결된다.

밤에 호텔 밖에 나와보니 고원의 맑은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 하늘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 기도가 절절한 사람들, 그들은 시짱 사람들이다. 20일 아침 라싸 시내 산책 길에서 만난 두 여인은 먼 지방에서 출발해 몇달동안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면서 대조사로 가고 있었다. 오체투지는 부처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의미로 이마를 포함한 오체를 바닥에 대고 절하는 것이다. 이 여인들의 이마에는 굳은살이 배기고 푸른 멍이 들었다. 이 절절한 기도는 무엇인가? 시짱에서의 일주일 내내 머리속을 맴도는 물음이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선한 시짱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짜시델레(扎西德勒, 당신의 행복과 행운을 빕니다).

글|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사진| 권기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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