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망 27일 뉴스(렁징•장톈딩 기자) 리페이(李菲)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서 피아노 즉흥연주에 심취해 있었다. 방해가 될까봐 망설이고 있는 찰나, 그녀가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해맑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우리 사이의 거리감과 어색함을 삽시간에 사라지게 했다. 리페이는 훌륭한 재주꾼이었다. 음악 뿐만 아니라 인터뷰 전과정에서 보여준 그녀의 말재간은 기자 조차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청춘에서 시작하여 오랜 정에 빠지다’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리페이도 어렸을 때 음악을 접했다. 4살 때 피아노를 배웠고 6살 때 무대에 올랐으며 13살 때 파아노 독주회를 열었다. 그렇게 수많은 ‘1등’을 거머쥐고 ‘최소 연령’의 타이틀이 리페이에게 붙어 다녔다. 리페이의 성장과정은 눈부셨다. 놀라운 성적을 만든 것은 눈부신 성장과정 뒤의 부단한 노력이었다. 그녀는 피아노 연주에 대한 사랑을 ‘청춘에서 시작하여 오랜 정에 빠지다’라는 말로 귀결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에 대한 천부적 소질을 보였다. 딸의 재능을 발견한 리페이의 부모는 당시 많지 않은 교사 월급을 쪼개 딸에게 피아노를 사줬다. 리페이는 악보를 금방 익혔고 음감도 좋았으며 스스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그런 딸을 보며 매우 기뻐했다. 리페이가 소녀시절 정전이 되거나 비 오는 밤, 그녀는 깜깜한 방에서 악보도 건반도 보지 않고 손끝이 건반에 닿는 감각에 의지해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 쇼팽의 낭만주의 색채가 물씬 묻어난다. 어쩌면 이런 경험은 마음과 음악의 솔직한 대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고 그녀는 말한다.
리페이도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이 먼저냐, 꿈이 먼저냐’라는 영원한 선택에 직면했었다. 졸업 무렵, 전시기획 업무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리페이는 국제홍보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과감히 거절했다. 그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피아노와 음악창작과 이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만이 진정한 가치의 실현이라고 생각했다.
청년작곡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리페이도 여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음악인으로서 “시장에 영합하느냐, 예술창작에 몰입하느냐”, “홍보 우선이냐, 퀄러티 우선이냐”등 여러 문제에 부딪혔다. 리페이는 훌륭한 파트너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된 것이라며 본인은 꽤 운이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여러해 전 인터넷에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친구 하나가 리페이에게 이런 노래를 한번 만들어 보라고 제의했다. 그 당시 리페이는 음악에 대한 이해와 선택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원치 않는 음악이라면 안 만들면 그만이라고 치부했다. 오랫동안 리페이는 창작시 ‘작품의 포지셔닝, 구조, 스타일을 확정한 후에야 작곡에 들어간다’라는 원칙을 견지했고 그 덕에 그녀의 창작 작품은 수차례 국제 창작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