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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새로운 기점과 새로운 여정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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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china.org.cn | 송고시간: 2018-07-12 10:28:28

한 번의 회의는 하나의 출발점


역사의 좌표는 관건적인 타이밍과 사건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7월1일 자싱(嘉興) 훙촨(紅船)에서 창당, 8월1일 난창(南昌) 청터우(城頭)에서 창군, 10월1일 톈안먼(天安門)에서 건국…이런 관건적인 역사의 접점과 마찬가지로 1978년 12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이하 11기 3중전회)도 중국 근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되고 있다. 

 

‘10년 대동란’(문화대혁명)과 오랜 ‘좌익’ 사상의 영향을 받아 중국의 정치∙경제와 사회 발전은 심각한 좌절에 봉착했고, 국민경제는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의 사회는 생산력이 저하되고 생활 소비재가 심각하게 부족해 위안화 외에도 ‘제2화폐’라고 불리는 양식, 천, 기름, 부식을 살 수 있는 표(票)가 있어야만 물건을 살 수 있었다.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 과학기술 추세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중국의 경제력과 과학기술 수준은 선진국과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덩샤오핑을 위시한 중국공산당원은 비범한 담력과 박력으로 중국을 이끌고 세계의 흐름을 뒤쫓아 개혁개방의 길을 걸었다.

 

3중전회에서는 실사구시의 사상노선을 재확립하고 전 당을 인도해 중심업무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전환했으며, 개혁개방을 실행하고 덩샤오핑을 핵심으로 한 2세대 지도부를 확립했다. 덩샤오핑이 11기 3중전회 개최 전에 발표한 <사상해방, 실사구시, 단결일치해 앞을 보라> 제하의 연설은 전체회의의 주제가 되었고, 조만간 시작될 혼란한 상태 수습과 개혁개방에 이론적인 보장을 제공했다. 11기 3중전회는 준이회의(遵義會議) 및 7차 당대회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열린 회의로 당과 국가의 운명과 중국의 발전 과정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11기 3중전회는 중국 개혁개방의 기점이자 중국 특색 사회주의 노선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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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中国网
키 워드:[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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