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평화유지 30년] '블루 헬멧' 장병 취재

중국망  |   송고시간:2020-09-25 16:2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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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파병 중국 평화유지 병사들이 임무 지역에 도착했다. 2013년12월 중국은 유엔 말리 안정화 지원단에 공병분대 155명, 경비분대 170명, 의료분대 70명을 파병했다. 중국 평화유지군은 매우 힘들고 위험한 지역에서 평화를 지켰다.


자나 깨나 딸 생각


현지는 통신 조건이 열악해 평화유지군은 가족과 연락하기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말리 현지는 인터넷 조건이 열악해 황사가 심할 때는 신호가 아예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지세가 좀 높은 곳으로 가서 휴대폰은 높이 치켜들어야만 신호가 잡혀 가족과 전화통화나 위챗 화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고 관주먀오는 말했다.


남수단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는 미슈강도 가족과 연락하느라 애를 먹었다. “통상적으로 밤에 현지의 인터넷 신호가 잘 터져 새벽 2시경에 알람을 맞춰놓고 한밤중에 일어나 가족과 채팅했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는 자신이 평화유지 임무에 참가한 것을 알리지 않았다. 따라서 화상 채팅을 할 때에는 네이멍구에서 합동 훈련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40여도의 고온에서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전술 위장’을 했다. “돌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부모님께 실제 상황을 설명 드렸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한바탕 우셨다”고 그는 말했다.


미슈강의 평화유지 임무 수행 기간에 딸이 태어났다. 딸아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딸의 사진을 보았다. “귀국할 때 딸은 11개월이었다. 당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빨리 집에 가서 딸아이를 안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딸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를 많이 듣고 싶었다.” 이 대목에서 실탄을 장전하고 총을 든 무장분자와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도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던 중국 군인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딸을 봤을 때 격리 상태에 있었다. 우리는 난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천생적인 혈연 관계라서 그런지 딸아이가 계속 나를 쳐다 보았다. 당시 눈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며 흐느꼈다.


“만약 어느 날 딸아이가 내게 자신이 태어났을 때 아빠는 어디 있었어요? 왜 엄마 옆에 없었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아이에게 그 순간 아빠는 아주 먼 나라에서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단다. 그곳의 어린이들도 너처럼 귀엽지만 그들의 생활 조건은 너무 어려워서 옷도 낡았고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없단다. 그리고 생명의 위험에도 직면해 있단다. 아빠가 그때 네 곁에 없었던 건 그 어린이들을 보호하러 갔기 때문이었단다라고 얘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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