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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치정, '국제 언어'로 중국의 이야기를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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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china.org.cn | 时间: 2019-01-15 10:11:20

1993년, 자오치정은 헨리 키신저 미 국무부 전 장관을 배동하고 푸둥 개발 모형을 참관했다. 


지구본 옆에 서서 푸둥을 생각하라


세월이 흘러 1978년 중국은 개혁개방의 위대한 노정을 시작했다. 시대가 급변하자 자오치정의 인생에도 변화가 생겼다. 1984년 그는 상하이공업공작위원회 당위원회 부서기가 되고 얼마 뒤 중국공산당 상하이시위원회 조직부 부부장, 이어 부장에 임명되어 중국공산당 상하이시위원회 상무위원이 된다. 이로써 자오치정은 도시 관리자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1990년 4월 18일, 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상하이 푸둥을 개발·개방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개혁개방이 푸둥의 기적을 낳았고 푸둥의 개척자들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푸둥의 운명이 바뀌었고, 상하이의 운명이 바뀌었으며, 내 운명도 바뀌었다.” 자오치정은 오늘 날 푸둥이 거둔 거대한 발전에 감탄했다. 그에게는 푸둥의 기억이 깊게 남아 있다.


푸둥의 기적은 중국 개혁개방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푸둥신구(浦東新區) 당 공작위원회 초대 서기, 관리위원회 주임였던 자오치정은 푸둥 기적의 창조자 중 한 명이자 산증인이다.


“선전(深圳)은 홍콩과, 주하이(珠海)는 마카오와, 샤먼(廈門)은 타이완(台灣)과 각각 마주하고 있지만 푸둥은 다르다. 푸둥은 태평양, 즉 유럽과 미국, 나아가 전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1990년 개혁개방의 총 설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음속에 그린 푸둥신구를 이렇게 묘사했다.


“상하이는 런던, 뉴욕, 파리, 도쿄 같은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국제 경제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자오치정은 덩샤오핑의 구상에 따라 푸둥은 건설 초기부터 국제적인 대도시를 염두했다고 말했다.


“지구본 옆에 서서 푸둥 개발을 생각하라.” 푸둥대도 141호에 위치한 낡은 사무실과 식당에 이 표어를 건 사람이 바로 당시 상하이시위원회 상무위원, 부시장, 푸둥신구 관리위원회 주임을 맡고 있던 자오치정이었다. 그는 푸둥 간부들이 국제적인 시야와 사유, 전략적 사고를 늘 갖게하도록 이 표어를 걸었다고 말했다.


푸둥 개방 28년이 흐른 지금, 푸둥의 기적은 세계인의 의심을 잠재웠다. 자오치정은 1993년 푸둥신구 간판을 갓 내걸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푸둥의 재정수입은 4억 위안 정도로, 월급 주고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지원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국내외 각계 인사에게 푸둥을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푸둥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푸둥을 개발하겠다는 중국의 결심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푸둥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에 투자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었다. 자오치정은 세계에 푸둥을 알리는 것이 첫번째 과제라는 것을 깨닫고 푸둥 ‘세일즈맨’으로 변신했다.


푸둥관리위원회 주임을 맡는 동안 자오치정은 국내외 각지의 대표단을 자주 만났다. 그는 늘 아름다운 입체모형 앞에서 그들에게 푸둥 개발의 비전을 자세히 설명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 10개가 넘는 국내외 방문단을 맞았다.


1994년 초 자오치정은 미국을 방문해 프랭크 웰스 디즈니 회장을 만나 푸둥에 디즈니랜드 건설을 제안했다. “디즈니를 통해 해외언론의 주목을 끌고 더 나가 세계 투자자의 관심을 끌길 바랐다.” 당시 자오치정은 이미 현대 마케팅 예술을 꿰뚫고 있었다. 자오치정의 제안에 웰스 회장은 즉시 푸둥으로 사람을 보내 현장을 시찰했고 푸둥이 디즈니의 요구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웰스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이 일은 수 년 동안 성사되지 않았다. 이는 자오치정이 푸둥 개발에서 조금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푸둥 개발이 진전을 거두면서 ‘푸둥 정신’에 감화되는 서방 정치가와 기업가가 늘어났다. 1994년 조지 H. W. 부시가 푸둥을 방문했다. 자오치정은 레이저펜으로 모형을 가르키면서 푸둥의 개발·개방을 설명했다. 부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몇 년만 젊었어도 푸둥에 투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둥 개발이 웅장한 교향곡이라면 작곡가는 덩샤오핑 동지다. 나는 연주자로 참여해 푸둥 개발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몸소 느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우리의 위대한 시대에 감사하고, 위대한 푸둥 개발에 감사한다.” 푸둥의 기적을 개혁개방의 공으로 돌린 자오치정의 표정에서 자부심과 감사의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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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来源:人民画报
关键词:[중국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