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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항일전쟁, 그 잊을 수 없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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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china.org.cn | 时间: 2015-08-21 13:33:32

 
  일본군이 만든 선전물에 얽힌 에피소드
 
  1942년 5월 1일부터 일본군은 5만여 병력을 집중하여 기중항일근거지 대(大)소탕 작전을 펼쳤다. 멍자위가 속한 27연대는 기중군구영도기관의 안전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그는 27연대 3대대의 분단 총지부 서기를 맡고 있었고, 반 소탕 과정에 모두 참여했다. 그는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제가 있었던 부대가 11일 새벽 한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며칠간 집주인이 들락 날락하면서 계속 우리를 뚫어져라 보는 겁니다. 나중에 한 노부인이 그림 한 장을 꺼내면서 ‘그림에 그려진 모습이랑 다르네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림 속 팔로군은 녹색 얼굴에 빨간 머리, 툭 튀어나온 송곳니에 피로 가득한 입을 벌리고서는 한 손으로 어린아이를 들어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부인에게 그 그림은 왜놈들이 만든 선전물이니 믿지 말라고 했고, 노부인은 그제야 안심한 듯 반나절 넘게 이불 뒤에 숨겨놓았던 아이를 꺼냈습니다.”
  항전 승리 후 멍자오위는 잇따라 해방전쟁,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한국전쟁을 회고하면서 “한겨울 먹을 것이 없어 볶은 쌀 한 줌과 눈 한 줌으로 버텼습니다. 제공권이 없어 야간행군만 할 수 있었는데, 어떤 때는 한번 시작된 행군이 며칠간 계속되었고 어떤 병사들은 걷다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지요.”
 
 
  가슴 속에 남은 한(恨)
 
  인터뷰가 끝날 무렵 멍자위에게 일생에 있어 가장 큰 아쉬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일본이 투항한 뒤 멍자위는 과거 전투를 벌였던 곳 중 몇 곳을 가 보았다. 전우들이 묻힌 묘지를 돌아보려고 했는데 자신이 묻었던 전우의 묘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을 노인에게 물어보니 1942년 5·1 소탕 때 왜놈과 매국노들이 팔로군 열사들의 묘지를 강제로 훼손했다고 했다. 멍자위는 눈물을 머금은 채 그 땅에 생화를 뿌렸다. “당시 전우의 시신을 묻을 때 관이 없었어요. 시신은 전시 군복을 입은 상태였고 군복 여기저기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군사용 면 헝겊으로 싸서 땅에 묻은 뒤 열사의 이름을 쓴 나무 패를 꽂았습니다.” 멍자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전투에 참여했고 함께 하던 전우가 스러지는 모습을 참 많이도 봤습니다. 지금은 나 같은 노병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요. 얼마 전 병원에서 검진을 했더니 의사가 날 더러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난 내가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천운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도,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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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来源: 人民画报
关键词:[ 중국인민항일전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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