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항일전쟁, 그 잊을 수 없는 역사
미얀마 원정군으로 파견
1943년 10월부터 1945년 3월까지 인도에 주둔하던 중국군은 미얀마에 역공을 펼쳐 중국-인도, 중국-미얀마 도로를 뚫고 미얀마 북쪽 지역을 되찾았다. 1944년 4월 반공(反攻)부대의 여우광차이와 전우들은 비행기로 ‘낙타봉 노선’을 지나 인도-미얀마 항일전장으로 날아갔다. 노선은 일본군 비행기와 대공포 통제 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사상율이 매우 높았고, 이 때문에 ‘죽음의 노선’이라고도 불렸다.
비행기가 인도 딘잔 비행장에 착륙한 뒤 여우광차이와 전우들은 큰 트럭에 탑승했다. 길은 울퉁불퉁 요동쳤고, 트럭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수풀이 우거진 밀림으로 들어섰다. 일주일 후 여우광차이가 속한 연대는 미치나(密支那) 기동부대에 편입되었다. 5월 상순 기동부대는 쿠몬 산맥에 진입했다.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가득한 첩첩산중에서 때로는 양손을 이용해 포복자세로 땅을 기어가야 했습니다.”
중국군에게 미치나 비행장 점령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 비행장을 점령하면 중국-인도 비행 시 높고 험준한 낙타봉을 피할 수 있었고, 비행 거리를 줄이고 비행고도를 낮출 수 있어 더 많은 물자를 운송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동시에 여러 원정부대를 동원하여 해당 지역의 군사 규모를 두 배로 늘렸다. 중미 연합군이 지속 공격전략으로 적의 숨통을 조인 끝에, 전투를 시작한 지 80여 일 만에 드디어 미치나 함락에 성공했다.
文章来源: 人民画报
关键词:[ 중국인민항일전쟁 역사]